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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아주머니의 초대

by 황경진

산타페에서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영어 선생님이셨던 캐롤린 할머니께 전했을 때, 할머니는 오래되어 너덜너덜해진 전화번호부를 한참 뒤적이다 마침내 Marie라는 이름을 찾아내셨다. 메:리가 아니라 머리:(엑센트가 뒤에 붙는다)라고 했다. 할머니가 잘 아는 사람인데 마침 산타페에 살고 있으니 가거든 꼭 만나보라 당부하셨다.


전화번호를 받아오긴 했지만, 선뜻 연락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90세 할머니가 소개해준 일면식도 없는 중년의 아주머니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우리 둘의 만남을 본인 일처럼 고대하고 계셨다. 이런 사소한 이벤트라도 챙기지 않으면 집에만 계시는 할머니는 심심해서 좀이 쑤실 터였다. 할머니는 내가 산타페에 도착한 이래 3일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와 언제로 약속을 정했는지 탐문하셨다. 처음에는 정착하느라 바빠서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댔지만, 곧 그럴듯한 핑곗거리도 동나고 적당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더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 수 없이 할머니에게 등 떠밀려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Marie와 나는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라폰다(La Fonda)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늘씬하고 큰 키에 시원한 커트 머리를 하고 있었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빨간색 끈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분이셨다. 아주머니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오셨다. 50대 여성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발랄한 첫인상이었다. 우리는 로비 한 구석에 붙어있는 빵집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히 미국인인 줄 알았던 Marie는 사실 스웨덴 사람이었고, 미국에 온 지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산타페에 정착한 지는 이제 1년 조금 넘었다고 하셨다. 쭉 캘리포니아에 살다가 조용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 산타페로 오셨단다. 평일에는 병원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즐기신다고 했다. 산타페는 고도가 높아서 스키 타운으로도 유명했는데 아주머니는 스키를 너무 좋아하셔서 겨울에는 대부분의 주말을 스키장에서 보낸다고 하셨다. 적당히 일도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는 삶이 참 좋아 보였고, 그런 삶의 여유 때문인지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슬슬 대화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Marie는 우리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함께 살고 있는 남자친구 Jon 아저씨가 우리를 궁금해하고 있단다. 반대로 나는 아주머니의 집이 무척 궁금했기 때문에 흔쾌히 초대를 수락했다. 우리는 곧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로 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일주일 뒤, Marie는 주말 저녁 식사에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친하게 지낸다는 예술가 부부 Lisa(리사)와 Warren(워런)도 함께 초대했다. 우리는 마트에서 맥주를 잔뜩 사 들고 아주머니의 집을 찾았다.


집은 시내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교외 마을에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초지 위에 듬성듬성 집이 들어선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주변의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아주머니의 집 역시 푸에블로 스타일로 지어져 있었다. 파란색 대문을 지나 실내로 들어서니, 입구에 작은 분수가 놓여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 때문인지 꼭 스파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주홍빛 네모 타일이 반듯하게 깔린 바닥과, 바깥의 풍경이 그림처럼 들어오는 널찍한 유리창이 인상적이었다.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던 Jon 아저씨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Jon은 인테리어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머물던 숙소의 인테리어 공사를 직접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넓은 미국 땅에서도 새삼 세상이 좁다는 걸 느꼈다.


Jon 아저씨는 우리를 뒷마당으로 안내했다. 마당이라기보다는 벌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야생의 땅이었다.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이웃집과 울타리도 없이 땅을 공유하고 있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경계가 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이면 스키도 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뱀과 같은 야생 동물이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밤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마당 한쪽에는 Marie 아주머니가 손수 길을 낸 나선형의 미로(labyrinth)가 있었고, 그 중심에는 아담한 벤치가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미로를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길도 하나밖에 없고 속이 뻔히 들여다보였지만 그래도 미로는 재밌는 공간이었다. 직선으로 걸으면 몇 걸음 만에 닿을 곳을 원을 따라 빙글빙글 걸으면 주변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 뷰로 펼쳐졌다. 한가운데 도착해 벤치에 앉으면 고즈넉한 오후의 정취가 온몸을 감쌌다. 캘리포니아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평온함이었다.


미로에서 놀고 있자니 Lisa와 Warren 부부가 도착했다. Lisa는 배우 겸 재즈 가수였고, Warren은 아트 갤러리를 운영하는 화가였다. 역시 50대 중반의 커플이었다. 마당에 있는 야외 테이블에서 애피타이저를 먹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고, 곧 다이닝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Lisa와 Warren 부부도 2년 전쯤 캘리포니아에서 이주해 온 커플이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캘리포니아의 삶과 산타페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나 산호세, LA 같은 대도시에 인구가 몰리면서 집값이 치솟고 교통이 혼잡해져 꽤 많은 사람이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멕시코에 정착한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 수준에 있어서만큼은 캘리포니아가 월등했기 때문에 아직 고등학생인 부부의 딸은 혼자 남아 이모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단다. 딸을 남겨두고 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나은 주거와 교육에 대한 고민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고 느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Lisa 아주머니의 주도하에 본격적인 수다 타임이 시작되었다. 저녁 식사 때까지만 해도 얼추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50대의 두 커플이 그땐 그랬지 하며 지난 추억을 회상하기 시작하자 정신이 점점 혼미해졌다.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었다. 아~ 지금은 옛날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지금은 영화배우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정도가 내가 파악할 수 있는 전부였다. 멋쩍은 나는 괜히 앞에 있는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홀짝홀짝 들이키기를 반복했고 11시쯤 되어 모임이 파할 무렵에는 혼자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그래도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하고 허그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Marie 아주머니와 Jon 아저씨와는 한 번 더 만날 예정이었지만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다시 보지는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산타페를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전했고, 아주머니로부터 나중에라도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긴 답장을 받았다. 잠깐이었지만 처음 만나는 이방인에게 삶의 한 단면을 공유해주신 아주머니와 아저씨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Marie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언제 또 산타페의 가정집을 방문해볼 수 있었을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캐롤린 할머니가 얼마나 만족해 하셨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산타페에 다녀온 후로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도 산타페나 가서 살까?”라는 말을 종종 한다. 이곳에서는 언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지 자주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Marie 아주머니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뜬구름 같았을 이 말이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실현 가능한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가족과는 더 멀어지고 친구는 더 없어지겠지만, 일이 년 정도라면 자연에 파묻혀 살아보는 것도 괜찮으려나, 싶기도 하다.


Marie 아주머니 댁의 뒷마당
Marie 아주머니 댁의 뒷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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