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오키프의 집 II
2. 애비큐(Abiquiu)의 집과 패티오
조지아 오키프는 1945년 애비큐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 한 채를 더 구매했다. 넓은 정원 터가 남아있는 절벽 위의 집이었다. 10년 전 마을을 산책하다가 이곳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구매 의사를 밝혔지만, 당시에는 매매 대상이 아니어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0년간의 긴 구애 끝에 마침내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 부지를 사들이게 된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애비큐의 집은 오키프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집을 얻는 데 10년이나 걸렸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일부 남아있던 뉴욕에서의 삶을 완전히 정리하고 애비큐의 집을 주 거처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오키프가 이 집을 샀을 때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진 상태라 건물 대부분을 새로 지어 올려야 했다. 보수 공사가 막 시작될 무렵, 오키프는 남편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뇌졸중으로 코마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뉴욕으로 향했고,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난 스티글리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그 후로 3년간 뉴욕에 머물렀다. 오키프는 애비큐의 집이 완공된 1949년 여름 다시 뉴멕시코로 올 수 있었다. 돌아갈 뉴욕의 삶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애비큐의 삶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애비큐의 집은 고스트 렌치의 집보다 훨씬 아늑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인구가 240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폭우나 폭설에도 고립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오키프의 집 정원에는 아직도 갖가지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오키프가 좋아했던 정원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수확한 과일과 채소는 필요한 곳에 기부도 한단다. 잘 정돈된 정원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정원 맞은편으로 보이는 교회 예배당에서도 마을의 온기가 느껴졌다.
푸에블로 스타일로 지어진 집 외관은 정갈하고 모던했다. 특히 건물 중앙에 난 네모 모양의 패티오(Patio)가 인상적이었다. 애비큐의 집은 이 패티오를 중심으로 열댓 개의 구분된 공간이 'ㅁ'자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패티오를 둘러싼 편편한 벽에는 각기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문과 창문, 좁은 통로가 나 있었다. 단순한 형태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오키프가 이 집을 그토록 소유하고 싶었던 이유도 패티오 한쪽 벽면의 작은 문 때문이었다고 한다. 패티오의 작은 문은 고스트 렌치의 페데르날 산만큼이나 오키프를 사로잡았고, 오키프는 이 문을 그린 작품을 열여덟 점이나 남겼다.
“It was a good sized patio with a long wall with a door on one side. That wall with a door in it was something I had to have.”
실내 공간은 채광이 좋았다. 거실과 침실 등 오키프가 자주 사용한 공간에는 모두 큰 유리창이 설치되어 바깥 풍경이 잘 보였다. 거실(sitting room)에서는 정원이 보였고, 침실은 서로 맞닿은 두 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애비큐의 메사(꼭대기가 편편한 산)와 차마 강이 내려다보였다. 무엇보다도 작업실의 풍경이 탁월했다. 가로로 널찍한 유리창 너머로 드넓은 황무지와 그 너머의 산과 산 위의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던 날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이었는데 창문 너머로 작은 비구름 하나가 비를 뿌리고 흩어지는 모습이 카메라 영상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이곳에서라면 창문만 바라보면서도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애비큐의 집 실내 공간 중 가장 특이했던 곳은 "Roofless Room"으로 불리는 지붕 없는 방이었다. 이 방은 말 그대로 벽은 있지만 천장이 뚫려 있었다. 뻥 뚫린 것은 아니고 서로 평행하게 늘어선 들보 위로 가느다란 나무가 서까래처럼 교차해 있었다. 볕이 좋은 날이면 바닥으로 선명한 체크무늬 그림자가 생겨난다고 한다. 바닥에는 자갈이 깔려 있었고, 천장처럼 바깥으로 뚫린 창문 앞에는 오키프의 조각 작품인 "Abstraction"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키프는 이곳에서 자주 일광욕을 즐기며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자연을 너무 사랑했던 그녀는 아예 방안으로까지 자연을 들였다. 햇빛과 비와 눈과 바람이 모두 들어오는 방안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오키프는 취향이 확고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은 집 안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죽은 동물의 뼈와 돌멩이를 좋아해서 직접 주워온 것들로 집 곳곳을 장식했다. 집 안팎의 조명은 대부분 알전구로 되어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등을 찾지 못해 알전구를 그대로 사용하는 편을 택했다고 한다. 식당과 작업실에서 사용한 큰 테이블은 오키프가 직접 디자인했고, 모든 가구와 그림이 신중하게 자리잡혀 있었다. 애비큐의 집은 주인을 닮아 차분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다.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작품이 되어 나오는 집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실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직접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진작가들이 오키프의 집을 작품으로 남겼다.)
애비큐의 집을 둘러보며 나는 오키프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오키프의 삶은 절대 순탄치 않았다. 본인보다 23살이나 많았던 스티글리츠와의 스캔들로 평생 가십에 시달렸고, 그와 결혼한 후에도 그의 외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하지만 오키프는 본인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 삶을 위해 꼭 필요했던 안식처를 자신의 힘으로 찾아내고 구축했다. 나는 그 점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의 문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는 오키프의 집을 둘러보며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따져보니 단순히 비슷한 물리적 공간에 살고싶다기 보다는 취향과 실행이 좀 더 단단해진 내 모습이 보고 싶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