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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랜치의 집

조지아 오키프의 집 I

by 황경진

산타페 여행 중 다시 방문하고 싶은 장소 한 군데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조지아 오키프의 집을 꼽겠다. 나는 그녀의 열렬한 팬도, 평소 그녀의 작품에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오키프의 집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도 계속 곱씹게 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40대 초반에 뉴멕시코주로 건너온 후 만 9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쭉 이곳에 정착해 살았다. 오키프의 집은 그녀에게 평온한 안식처이자 끊임없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였고, 그녀가 남긴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기도 했다. 오키프의 집은 오키프의 후기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장소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Abrams 출판사에서 출간한 “Georgia O’keeffe and Her Houses(2012)”라는 책을 구매해 읽었다. 이 책은 오키프가 집을 구매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집을 개보수한 과정, 공간 활용 방법과 집 안팎의 풍경을 그린 그림에 대해서까지 집과 관련된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오키프의 집은 그녀가 미국 근현대 미술사에 끼친 영향력을 인정받아 1998년 국립 역사 유적지(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었다.


The House I Live in.jpg Georgia O'keeffe, The House I Live in, 1937


1. 고스트 랜치의 집: 페데르날 산과 절벽


조지아 오키프는 뉴멕시코에 두 채의 집을 소유했다. 산타페에서 북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애비큐(Abiquiu)의 집과 그곳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고스트 랜치(Ghost Ranch)의 집이다. 오키프는 가을과 겨울은 주로 애비큐의 집에서, 봄과 여름은 고스트 랜치의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두 채의 집 중 오키프가 먼저 살았던 곳은 고스트 랜치의 집이다. 고스트 랜치는 절벽으로 막힌 황무지에 휴가용 별장이 들어선 큰 목장이었다. 오키프의 집으로 명소가 된 지금에도 반경 수십 킬로 내로는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외진 골짜기의 땅이다. 오키프는 뉴멕시코에 여행을 왔다가 이곳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여러 번 찾아가려고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표지판조차 없어서 (소머리뼈 하나가 길가에 놓여있었다고 한다) 몇 번이나 헛수고를 하고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마침내 고스트 랜치를 찾았을 때, 그녀는 이곳의 이색적인 풍경에 반해 곧바로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몇 년간은 손님용 숙소에서 지내다가 1940년에 주인이 사용하던 집을 구매했고, 그 후로 겨울을 제외한 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오키프는 고스트 랜치를 둘러싼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오키프가 특히 사랑했던 것은 앞마당에서 정면으로 내다보였던 페데르날(Pedernal) 산이었다. 죽기 전 본인의 유해를 산의 정상에 뿌려 달라고 유언했을 만큼 이 산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유언대로 오키프의 재는 산꼭대기에 뿌려졌다) 스무 편이 넘는 작품을 통해 산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My Front Yard, Summer(1941)"와 "My Front Yard, Autumn(1941)" 시리즈는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The house I live in(1937)"은 고스트 랜치의 집과 뒤로 보이는 산의 풍경을 함께 담은 작품으로 책의 표지로도 사용되었다.


"Ladder to the Moon(1958)"은 실제 풍경을 담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멀리 보이는 페데르날 산등성이 위로 커다란 사다리가 청록 빛 하늘에 떠 있는 초현실적인 그림이다. 오키프는 고스트 랜치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무렵, 나무 사다리를 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지붕 위에 올라가 주변 풍경을 내려다보았다고 한다. 여름에는 옥상에서 야영을 하며 산 위로 뜨고 지는 달의 모습을 즐겨 보았다. 이 그림은 사다리에 기대어 친구를 기다리던 어느 저녁, 페데르날 산 위로 하얀 반달이 높게 떠오른 것을 보고 다음 날 바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 어느 매거진에서 오키프를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중 가장 낭만적인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평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무엇보다 이 작품에 오키프의 낭만이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다.

Georgia O’Keeffe, My Front Yard, Summer, 1941. Oil on canvas, 20 x 30 in. Georgia O’Keeffe Museum. Gift of the Georgia O’Keeffe Foundation. © Georgia O’Keeffe Museu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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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Georgia O'keeffe, My Front Yard, Summer, 1941 (우) Georgia O'keeffe, Ladder to the Moon, 1958

오키프가 그린 또 다른 절경은 집 북쪽을 감싸고 있던 붉은빛과 노란빛이 도는 절벽이었다. 남편은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절벽의 색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실제로 가서 보니 그림에서 본 그 절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오키프는 이곳을 화가를 위한 땅이라고 불렀다. 시시때때로 색감이 변하는 노랗고 붉은 절벽과 파란빛과 보라빛이 도는 산과 회색이기도 하고 녹색이기도 한 땅이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키프는 뉴멕시코에 정착한 후로는 꽃보다는 주변 풍경을 그리는 데 정성을 쏟았다. 여전히 꽃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그들이 이 아름다운 땅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꽃을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Untitled (Red and Yellow Cliffs), 1940.png Georgia O'keeffe, Untitled (Red and Yellow Cliffs), 1940

오키프는 세간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늘 꿈꿔왔다고 한다. 고스트 랜치는 그 꿈을 이루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오키프가 이 집을 구매할 당시에는 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식료품을 구하려면 40분이나 차를 타고 근교로 나가야 했다. 이렇게 불편한데도 그녀는 이곳에 정착했을 때 비로소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기 어려웠을 고독을 즐기며 오키프는 절반이 넘는 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나는 고스트 랜치와 오키프의 관계를 생각하며 사람과 땅 사이에도 운명이라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스트 랜치는 현재 교육 및 휴양 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많은 아티스트와 여행자와 휴식을 찾는 이들이 이곳에 머무르며 영감을 얻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넓디넓은 황무지에서 고독을 즐기고 싶은 분들께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고스트 랜치 웹사이트: https://www.ghostranch.org/)


(2편에서 계속)


고스트 랜치의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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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르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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