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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번개 쇼

by 황경진

산타페에 온 지 3주가량 지난 주말 저녁이었다. 해가 진 하늘은 어두웠고, 남편과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예능을 보거나 책을 읽으며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고장 난 형광등이 점멸하는 것처럼 무언가가 번쩍했다. 거실 등은 멀쩡했다. 곧이어 다시 하늘이 번쩍 빛났다가 어두워졌다. 밖으로 나가보니 머리 위 하늘은 별이 총총 떠 맑은데, 서쪽 하늘 멀리 두텁게 낀 적란운에서 소리 없이 번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대문 앞에 서서 잠시 번개를 구경하다가 하늘이 잘 보이는 언덕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텅 빈 도로를 지나 텅 빈 언덕 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런 일에 동요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 듯했다. 차에서 내려 사방이 트인 공간으로 조금 걸어 나갔다. 언덕 아래쪽으로 도시의 불빛이 어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나지막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영화관에 온 관람객이 예고편이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듯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번개 쇼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곧 서쪽 하늘에서 강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어둠에 가려졌던 구름의 형체가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트려대는 듯 아우성쳤다. 주로 구름 안쪽에서 산란하던 빛은 간간이 뚜렷한 지그재그 선을 그으며 땅으로 곤두박질쳤고 그때마다 아주 큰 섬광이 일었다. 이 정도 낙뢰면 땅을 뒤흔드는 우레가 뒤따라야 마땅한데 모든 일이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는 게 거짓말 같았다. 소리가 전달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나 보다. 쉴 새 없이 포탄이 터지는 전쟁 영화를 무성으로 보는 것처럼, 눈만 감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함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라이브 번개 쇼를 지켜보며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피뢰침”을 생각했다. 소설에는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인 "아다드"가 등장한다. 아다드는 바빌로니아 폭풍우의 신 이름이다. 어릴 적 벼락을 맞은 경험이 있는 주인공은 우연히 이 모임을 알게 되고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정모에 참석하게 된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이 모임의 목적이 다시 벼락을 맞기 위한 것임을 알아채고 주인공은 깜짝 놀라 리더인 J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전격을 받으려 하나요?”


J는 대답했다.

“화가는 왜 그릴까요? 자동차 레이서들은 왜 경주에 나서고 작가들은 어쩌자고 글을 쓸까요? 그냥 살면 될 텐데 어쩌자고 그들은 그토록 아무 소용없는 일에 기껏해야 평생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찾아올 희열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걸까요?”


주인공이 말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당신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들은 꾸준히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올 그 어떤 순간을 기다리는 거잖아요. 당신과는 달라요.”


J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같습니다. 우리도 존재가 전이되는 그 순간을 위해 당신이 본 것처럼 이렇게 늘 준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격을 찾아 헤매도 그가 우리를 찾아주기 전에는 세례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전격도 전격 나름.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진짜가 찾아옵니다. 그때 아주 잠깐 다른 세상, 다른 나를 보는 겁니다. 나는 내 몸과 대기와 대지의 주인이 됩니다. 아주 잠깐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한 사람의 퍼포머인 셈입니다. 언젠가 지극히 완벽한 공포와 전격을 일치시켜 자아를 뛰어넘는 그 경지를 이를 때까지 나는 적란운을 쫓아다닐 겁니다.”


나는 오랜시간 지속되는 번개 쇼를 지켜보며 만약 "아다드"라는 모임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중 누군가는 성지순례를 떠나는 사람처럼 이곳 뉴멕시코주의 높은 사막 지대까지 전격을 찾아 떠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주인공만큼이나 낙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의아했지만, "자아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 매 순간 “공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는 J의 말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몇 년 전 그림을 그리다가 백지를 앞에 두고 엉엉 운 적이 있었다. 늘 조그만 종이에 작게 그림을 그리다가 처음으로 A3 사이즈 그림을 그리게 된 날이었다. 갑자기 흰 종이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지면서 도저히 백지를 채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벽까지 흰 종이와 홀로 기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한바탕 울음을 터트리고 나서야 간신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당시 참가하고 있던 워크숍의 지도 선생님께 그림을 보여드렸더니 선생님은 가차 없이 이 그림은 본인과 어울리지 않으니 다시 그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똑같은 그림을 몇 번이고 다시 그렸는데 한 번 그리고 났더니 더는 종이가 무섭지 않았다.


다 큰 어른이 종이 앞에서 울어버린 게 너무 부끄러워서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남편에게만 살짝 털어놓았었다. 당시 워싱턴 D.C. 를 여행하고 있던 남편은 필립스 콜렉션(The Phillips Collection) 미술관에서 르누아르 전시를 보고 온 참이었다. 남편은 그날 본 그림 중에서 "시골의 무도회"라는 그림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시골의 야외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한 쌍의 커플을 실제 사람 크기만큼 크게 그린 작품이었다. 그림의 설명에는 르누아르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느꼈던 두려움에 대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미 잘 알려진 화가였던 40대 초반의 르누아르는 본인 키보다 큰 캔버스를 앞에 두고 혹여나 그림을 망치게 될까 봐 몹시 두려웠다고 한다.


물론 두려움을 극복한 르누아르는 세기의 명작을 낳았고 나의 그림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만, 당대의 유명한 화가도 빈 캔버스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그때의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었다.


결국 작가든, 화가든, 스포츠 선수든, 혹은 J처럼 내가 이해하지 못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자아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른 자는 그만큼의 큰 공포를 받아낸 자들 인지도 모른다. 내게 찾아오는 작은 두려움을 조금씩 이겨내다 보면 언젠가 내 인생에도 존재가 전이될 만큼 짜릿한 순간이 찾아올까 생각하면서 오래도록 끝나지 않는 번개 쇼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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