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월간 에세이)
처음 발 딛어보는 동네에 도착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아파트단지에 들어설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이방인으로 보는 것 같은, 보내는 이 없는 시선을 느끼며 101동을 찾아
비밀번호 모르는 현관문 앞에 멍하니 서서 빠르게 흐를리 없는 시계만 바라보고 있던 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당신일까 뒤돌아보다가 낯선 이가 나오면 공연히 혼자 부끄러워져 ‘왜 이렇게 늦어…’하고 혼잣말을 웅얼거리고
‘나 기다리는 사람 있어요‘라는 표를 내기 위해 연락없는 핸드폰을 뒤적거려요.
기다리는 나를 알면서도 더 빨리 나오지 않는 당신을 조금은 원망하기도 했다가, 준비가 늦어지는거겠지 스스로 타협하기도 했죠.
그렇게 멍하니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날씨가 좋아 아파트는 햇살에 반짝거리고, 바람도 선선해 나뭇잎도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던 그 순간.
당신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누구보다 반짝거리며 살아가고, 꺼지지 않는 촛불같은 당신을 말이죠.
곱창집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곱창을 잘 자르지도 못하면서 가위와 집게를 고집하는 당신을 보며 지금이야 ‘그 때 오빠 고집불통이었어‘하고 놀리지만
사실은 그 날 그런 당신을 보며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잘 하지 못함을 알면서도 선뜻 가위를 집을 수 있는 사람.
“오빠 그렇게 자르는거 아니에요!” 하고 말했을 때, “ 그럼 어떻게 자르는건데? 알려주면 내가 해볼게”하고 말 할 줄 아는 사람. 그게 당신이었어요.
사실 저는 그 날 부터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건지도 모르겠어요. 선하디 선한 눈빛과 그에 상반되는 단단한 하관이 그 이후로 매일 그려질줄은 저도 몰랐거든요.
제 인생에 당신처럼 큰 촛불은 처음이기도 해요. 계속해서 삶을 개척해나가고, 의지를 가지고 굳게 움직이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 앞으로 무얼 할까 기대되기도 해요.
매일 저녁에는 다 꺼져가는 불꽃처럼 일렁거리다가도, 아침이 되면 또 크게 타오르며 빠른 속도로 촛농을 떨어트리며 살아가요. 그 떨어진 촛농들이 당신의 불꽃의 결과가 되어감을 당신의 옆에서 살아가며 체감해요. 사람들이 저에게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서 함께 하고싶다고.
그런 당신이 혹여나 잘못될까 슬픈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게 와닿아요.
사람들이 제게 당신을 부탁해요. 잘 챙겨달라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당신도 제게 스스로를 부탁하죠.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당신이라는 초 하나가 제게로 와서 많은 것들을 밝혀주었어요. 그래서 전 당신이 밝게 밝힐 수 있는 방이 되기로 했죠. 불을 꺼트릴 바람도, 비도 눈도 모두 막아줄 수 있는 그런 당신만의 방 말이죠.
당신이 이 글을 보게되는 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리던 날, 멍하니 당신을 기다리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 마음이 만조에 이르고, 당신이 기꺼이 바다에 뛰어들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가 서로의 모난 모습까지 감싸 안아줄 수 있고 첫만남과 여전한 마음을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 우리가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같은 문에서 나와, 다시 같은 문으로 들어가는 날들로 우리의 하루가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두고오는 모든 것들은 그 안에 있을 거예요. 그게 무엇이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요.
계단을 내려오는 당신의 발소리가 들려요. 당신은 늘 다른사람들보다 더 빠르고, 무겁게 걸으니까요.
생각을 멈추고 핸드폰으로 제 얼굴을 비춰봐요.
어떤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봐야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기로해요. 그게 저고, 당신은 이런 제 모습을 사랑하니까요.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요.
당신이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서, 제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