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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14. 2023

15. 이번만 살려줘, 신이 진짜 있나?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15. 이번만 살려줘, 신이 진짜 있나?


        성모병원 21층에 있는 무균실 병동의 하나인 이곳은 복도 한 바퀴를 돌면 70~80m 정도 될 듯하다. 30~40분 정도를 하루에 3번 걷는다. 운동은 살아야만 한다는 의지이다. 어릴 때부터 늘 불렀던 찬송가를 듣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지?’ 슬프다는 감정이 차오른다. 

        침대로 돌아와 ‘살려만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심신이 약해 질대로 약해진 것이다. 


        “두려워 마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이사야 41:10)” 문득 생각난 성경 구절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신을 부르고 찾는다.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이 하루에 몇 번씩 찾아온다. 미쳐가나 보다. 이성이 감성을, 감성이 이성을 혼란스럽게 제멋대로 지배하는 내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세상이 있는 것이다. 죽는다면, 죽음 이후 세상은 나에게 조금도 의미 없다. 신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였던 것도 ‘나’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나’가 없다면 신이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신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고, ‘나’가 신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가 없으면 세상은 공(空)이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절대자의 존재는 ‘나’라는 생각 속에 있다. 천지를 창조한 첫날에 신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가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죽음이 무서워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그 신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뭐든 신이 나타난 그 순간을 태초(창세기 1:1)라고 한다면 그 시점에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시간만 있고 공간이 없을 수 없고, 공간만 있고 시간이 없을 수 없다. 시간과 공간도 없으면 신도 없다. 시간과 공간이 있을 때만 신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시간도 공간도 ‘나’라는 존재가 의식을 하는 순간에 생긴다.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 개념이다. 공간은 3차원이지만, 시간은 1차원이다. 공간 속의 ‘나’는 움직임 없이 있을 수 있지만, 시간 속의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죽는다는 것은, 공간과 시간 둘 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신이 있다면 신도 ‘나’와 마찬가지이다. 

    

        신이 죽지 않는 이유는 내가 죽어도 또 다른 누군가가 계속해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것이다. 인간이란 동물이 세상에서 멸종하는 순간이 되어야만 신은 죽는 것이다. 그때까지 신은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신이 진짜 있어?’ 

        인간의 마음이 약해져서 의지할 존재를 찾는 것일 뿐, 기도하는 중에 신은 없다는 생각이 ‘훅’ 들어온다.


        죽음이 무서워 살려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어진다. 죽음으로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고, ‘나’라는 존재가 공(空)이 되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면, 죽음으로 공(空)이 되고 무(無)이다. ‘나’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은 ‘나’가 신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불교철학을 공부해야 하나 싶다.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침대에 엎드려 기도한다. 백혈병으로부터 살려만 주면 정말로 열심히 신의 뜻을 따르겠다고 참회의 기도를 한다. 나름 착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알지도 못하는 죄에 신의 용서를 구한다. 

        병이 치유되는 것과 죄를 회개하는 것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아무튼 내가 알든 모르든 죄로 인해 죗값을 받아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나보다 더 나쁜 놈들은 뭐지, 내가 뭐 하는 짓이지’ 하면서 웃는다. 삶이 무엇인지 몰라 두려운 것이다. 울다 웃는다. 미쳤다



"인간이 모두 죽어야만, 신도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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