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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15. 2023

17. 눈물, 새벽하늘에 흐른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17. 눈물, 새벽하늘에 흐른다.

     


        환자들끼리 통하는 것이 있다. 절망과 슬픔은 공유하지 않는다. 매 순간 가지는 감정이지만, 우리는 전혀 모르는 듯이 하루를 산다. 서로가 묵시적으로 이해하는 자연스러움이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입원실을 조용히 나오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조용히 복도를 걷는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잠자고 있다. 서울 하늘 아래 나의 존재를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새벽잠의 달콤함을 맛보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죽든, 안 죽든 그들의 생활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창밖으로 반포대로를 달리는 차량의 불빛이 보인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른 새벽에 강남의 도로를 달리는 저 사람의 하루도 시작되고 있다. 슬프고도 혼란스러운 감정이 밀려온다. 새벽하늘, 나 혼자 죽는다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여기 있는 이유를 또 찾아본다. 나를 위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궁금할 뿐이다. 

        운명은 앞에서 날라 오는 돌이라 피할 수 있고, 숙명은 뒤에서 날라 오는 돌이라 피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백혈병은 운명이다. 죽음이 남들보다 빨리 운명으로 다가온 것이다. 운명을 바꿀 힘은 사람에게 있다. 숙명이 무서운 것이지, 운명이라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찾아온 절망적인 슬픔에는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유가 없어 설명할 수 없다. 사사롭게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지금 나 같은 사람이 운명적으로 매일 입원하고, 매일 퇴원한다. 간혹 숙명으로 끝나 죽음으로 나가시는 분들도 있다. 이곳에서는 불행이 행복보다 훨씬 흔한 곳이다. 어쩌면 행복은 이곳에 없을 수도 있다. 내가 화를 낼 까닭은 없다. 억울한 일은 아니다.     



        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계속해서 힘들지만, 지금 나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다행스럽게도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다. 기댈 언덕이 하나 없는 쓸쓸한 인생이었다. 혼자서 독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늘 해왔던 대로 정리할 수 있다. 비참한 운명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남에게 의지하는 것은 좌절이다. 투병 생활에 그 어떤 어려움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호락호락 바라보는 것은 치명적인 위험이다.   


   

        오늘 새벽의 생각이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다가 다시 추락한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 병에 걸린 것인지 모르겠다.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다시 차량 불빛이 있는 반포대로를 본다. 숙명일 수도 있으니 운명에 대해 너무 욕심내지 말라고 신이 경고하는 것 같다.      



        새벽의 어둠이 사라지면서 아침 햇살이 창밖에서 들어온다. 가슴이 무거운 것은 내일 새벽에 이 모든 고민이 또 반복되는 것이다. 새벽에 조용히 떠들어 본 것이 눈물로 끝난다. 어제처럼 오늘도 아침이 밝아오는 복도에서 눈물로 시작한다.


    

  "앞에서 날라오는 돌은 피할 수 있다.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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