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믿음이라는 이름의 복종

<신이란 무엇인가 묻기 시작했을 때>

by 경국현


내가 알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것 —
그 모든 것에 무릎 꿇는 것이 신앙이다.
그리고 그 굴복의 이름이 ‘믿음’이다.


공자는 인간이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덕목으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들었다.
여기서의 ‘신’은 사람 사이의 성실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다르다.
그것은 신(神)에 대한 일방적 복종이다.
자발적 의심이 아니라, 절대적 믿음을 강요한다.


신에 대한 믿음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증명되지 않았기에, 믿으라고 한다.
만약 명백하고 확실하다면,
‘믿음’이란 단어 자체가 필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본래 호기심을 지닌 존재다.
그 호기심은 문명을 이뤘고,
과학은 그것을 통해 대부분의 ‘미지’를 해명해왔다.


그러나 종교는 이 호기심을 ‘죄’라 부른다.
창세기의 선악과는
지식과 지혜를 향한 인간의 갈망을 상징한다.
그 갈망이 죄라면,
우리는 태생부터 죄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신은 지킬 수 없는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어긴 인간을 죄인으로 낙인찍는다.
동물은 죄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죄가 있다.
그것이 종교가 말하는 세계다.


신은 순종을 요구한다.
삶의 고통을 감내하면,
죽은 뒤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 약속한다.
영혼의 시간은 영원하니,
육체의 고통은 감내하라는 논리다.


불교도 다르지 않다.
싯다르타 한 사람만이 부처가 되었고,
그조차 죽은 뒤에는 신격화되었다.
마치 예수가 죽은 뒤
복음서가 쓰인 것처럼 말이다.


신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 중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고,
그 말에 복종한 사람은
죽는 날까지 노예처럼 살아간다.
고통과 고난을 신의 섭리라 믿는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15살, 교회에서 친구가 천사를 보았다고 울던 기억이 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건달이 되었다.
나는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인간의 감각은 오류를 범하고
관념은 쉽게 조작된다.
종교란 바로 이 오류에서 비롯된
형이상학적 산물일지도 모른다.


믿음을 강요하는 신앙은
자아를 무너뜨리고,
의지를 빼앗는다.
희생을 당연한 미덕으로 포장하며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만든다.


수천 년이 흘렀지만
신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이야기들은
신화이거나 조작된 역사였다.


기독교인은 부처를 가짜라 하고,
불자는 예수를 가짜라 한다.
진실은 무엇인가?
호기심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하지만 종교는
그 눈을 감기고,
믿지 않는 이들을 악령이라 부른다.


고통 속에서도 찬양하라 한다.
가진 것 없이 살아도,
그것이 복이라 말한다.
그렇게 길들여진 인간만이
바른 신도라 여겨진다.


종교는 도덕을 만들었고,
그 도덕은 신을 향한 굴종 위에 세워졌다.
순종이 미덕이 되었고,
죄인은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니체는 이 모든 것을 거부했다.
『우상의 황혼』에서
서양 철학의 역사를 망치로 깨부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자아를 짓밟는 도덕과 신에 저항했다.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
생각 없이 사는 다수.
그들은 안개를 햇살이라 착각하며 산다.


부처도 고행의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고통조차 또 다른 집착이라는 것을.
죽은 뒤의 보상을 바라는 삶은
어리석은 희망일 뿐이다.


삶은 연극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연기하며 살 이유는 없다.
삶이 연속극이라면,
그 시나리오는 결국
누군가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일 것이다.


군중은 무지하다.
집단지성은 변명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집단최면이자 선동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원한 것도 민중이었고,
모세가 학살을 실행한 것도
신의 이름을 빌려서였다.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유대인 학살 —
모두 광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된 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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