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르바는 웃고, 나는 울었다

<돈이라는 감옥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by 경국현

욕망은 두 갈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적 욕망과
눈에 보이는 소유에 대한 욕망.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은 불행이라는 늪에 빠진다.
결핍은 언제나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생겨난다.


현대 사회에서 소유는 곧 계급이다.
많이 가진 자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적게 가진 자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돈, 명예, 권력.

결국은 모두 돈으로 환원된다.
돈으로 명예를 사고, 돈으로 권력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산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외치며 산다.


하지만 돈을 가진 사람은 항상 소수다.
행복은 절대적인 금액이 아니라
타인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느낌에서 온다.
문제는, 그 느낌은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가졌지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성적 쾌락을 모른 채
오로지 돈만 좇아 살아온 무지의 대가다.


성경은 ‘잃어버린 양’에 대해 말한다.
하나가 없어졌을 때, 우리는 온통 그 하나에 집착한다.
가진 것이 줄어들까 두려워하고,
이미 가진 것도 불안해한다.


돈이 없어도 평안한 사람이 있고,
돈이 많아도 불안한 사람이 있다.
후자가 더 불행하다.
진짜 문제는 절대적 부족이 아니라
상대적 결핍에 대한 민감함이다.


정치, 공부, 직업, 사랑까지도
모두 돈의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가난을 경험한 자는 가난을 두려워하고,
경험하지 못한 자는 가난을 견디지 못한다.


특히
부잣집 2세들, 그리고
한때 성공했다가 추락한 이들은
‘허세의 상실’에서 절망을 겪는다.
돈은 곧 자기 존재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족할 만큼만 갖는다면 자유로울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이상을 욕망한다.
그리고 스스로 불행을 선택한다.
자족의 기준은 언제나 미끄러져간다.


돈은 많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방향 잃은 어른아이처럼 산다.
돈이 없지만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요히, 고독하게 살아간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후회 없이 살고 죽는다.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외롭지 않은 삶이었다.


우리는 그 반대의 길을 걷는다.
매일 돈, 돈, 돈을 외치며,
불안과 후회, 조바심 속에서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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