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국현 Jul 18. 2023

25. 제주 숲,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25. 제주 숲,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     



        질병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문제로 다가온다. 나 같은 환자를 곁에 두는 순간에 함께 사는 식구들은 일상에 어려움이 있다. 먹고, 자고, 일하는 생활이 꼬인다. 그것은 예상된 일이지만, 삶의 위로는 집에 있으므로 병든 사람이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다. 

        탕자가 아비의 집을 찾는 것은 삶에 대한 위로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누가복음 15장).   


  

        죽어가는 것은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집을 떠나서 낯선 곳에서 죽음을 준비한다면, 그 이유의 본질은 사랑일 것이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죽음을 그곳에서 차분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죽어가는 과정은 선택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라 그 누구도 꾸짖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선뜻 움직이기 어려운 곳을 찾았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 제주였다. 제주는 그렇게 선택된 장소이다. 요양을 핑계로 제주 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울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였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라 흐느끼면서 내려왔다. 


        숲길을 걸었다. 


        의외로 숲속에는 나와 같은 질병으로 온 사람들이 많다. 놀기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 제주에 온 사람들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다. 죽을병 걸린 사람들이 마지막 기회로 찾아온 곳이 한라산 숲이었다. 그들과 묘한 동질감으로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았다.   


   

        기꺼이 이곳에 온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온 사람들이다. 

        

        아무런 일도 겪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방법은 없다. 살아온 인생 경로, 살았던 지역, 나이들이 다르다. 육지에서 위로받지 못한 자들이 제주 숲속에서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였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침착함과 고요함으로 서로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는 인연들이다. 

        숲에서 호흡하는 자들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사랑으로 연결되는 인간적 위로이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집단이 형성되어 친밀감을 서로 표시한다. 병이 있는 자들이 모여 넋두리하는 사회적 연결이 형성된 것이다. 위로받지 못한 증오와 분노가 숲속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사람을 보면서 평안을 얻는다. 죽음과 슬픔에 대한 경험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는 삶이 끝나가면서 비슷한 소망을 다들 가지고 있었다.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필요하였다. 가능하다면 고통이란 감정 없이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했다.      



        제주의 숲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 ‘너’가 아니라 ‘우리’가 된다. 

        인간으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우리’가 되어 공유한 것이다. 서로가 상호작용을 하여 긍정적인 행동과 생각을 가진다. 우리한테 함부로 하는 모든 것과 싸워야 한다면서 격려한다. 


        서로가 가르친다. 

        저마다 존재함으로 가치가 있었음을 알게 한다. 

        위로받지 못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살아난다.      



        아프고 힘든 시간이지만, 숲속의 바람과 햇살이 치유한다. 말하지 않을 뿐, 다들 잃어버린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는 비울 수 없는 것들이 제주에서는 손쉽게 비울 수 있다. 숲속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버림이 많아진다.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동기부여들이 생긴다. 

        숲속에 올 때마다 얼굴에 주름살이 펴지고 있다. 어두웠던 얼굴에 미소가 보인다. 돌과 나무, 그리고 숲속 바람은 서로 무관한 우리를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인연이 되어 숲속에서 우리들의 세계를 만들었다. 

        남들이 보면 환자들끼리 모여 뭐하나 싶겠지만, 목마름으로 숲속에 모인 사람들이다. 죽음을 앞두고 쓸쓸하게 찾아온 제주인데,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아 왔는데, 이렇게 숲속에서 위로받지 못한 영혼을 버리고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꺼이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작가의 이전글 23. 마음. 너는 어디에 있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