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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18. 2023

27. 숲속 벌레, 이유도 없이 죽는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27. 숲속 벌레, 이유도 없이 죽는다.


    

        한라산 숲길을 걷는다. 숲속 공기가 좋다. 숲속에서 시간은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이다. 발에 밟히는 나뭇가지와 흙들, 그리고 숲속에 가득한 맑은 공기는 피부에 젖어 스며든다. 숲속에서는 갖고 싶었던 것들이 사라진다. 점심 무렵에 와서 해가 지도록 명상에 빠진다.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는 포근하다.


        온갖 그리움이 어쩔 수 없이 올라온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삶의 시작과 끝에 관한 명상은 ‘자아’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이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속에서 삶의 본질을 찾아간다. 어떻게든 삶의 비밀에 답을 찾아야 한다. 생명의 의지가 동기부여가 되어 숲에서 눈을 감는다.      



        동물의 진화는 생존이 목적이다. 숲속의 명상은 나를 진화하도록 한다. 나의 호흡이 숨을 들이시고 내뱉는다. 내가 마시는 공기는 78%가 질소, 21%가 산소, 기타 1%로 구성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동물은 21%의 산소와 78%의 질소를 마시면서 생명이 유지되도록 진화하였다.

        산소가 아니라 질소를 마시면서 살았다고 생각해 본다. 나의 DNA는 지금의 대기 상태에 최적화되었다. 반대로 산소가 78%라면 나는 죽을 것이다. 기타 성분의 하나인 이산화탄소가 21%가 되어도 나는 죽을 것이다.      



     

   내가 호흡하는 공기 대부분은 질소이다. 지구라는 별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외계인이 찾아온다면, 살아 숨 쉬는 모든 지구상의 동물은 질소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로 이해할 것이다.


        진짜가 가짜가 되었다. 속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주의 공간에서 거대한 제3 눈을 뜨고 바라보는 존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한 모든 것이 모두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이 숲속에서 위로가 된다. 나라는 존재가 우주에서는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명상은 나를 별 볼 일 없는 생명체로 만들어 간다.      



        한라산 숲속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둑어둑한 숲이 많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원시적인 모습이다. 그 숲길은 명상이고, 나를 생존하게 하는 곳이다. 무슨 방법을 찾고자 온 것이 아니다. 방법을 찾을 수 없어 한숨 쉬면서 걷는 것이다. 수많은 생명체가 숲속에서 살고 있다.


        숲속의 벌레들과 나는 살아가는 이유가 같다.


        이런 거친 환경에서도 오래전부터 사람은 동식물들과 함께 살아왔다. 원초적 숲길이 태초에 창조된 우주의 모습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나무를 꺾고, 벌레를 밟는다.

        예의도 없고 겁도 없는 무의식적 행위이다. 웃음이 나온다. 인생에 너무 의미부여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발에 밟힌 벌레는 이유를 모르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생로병사에 배후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이유가 있는가?’ 쓸데없는 고민이다. 명상은 숲길을 나오면서 끝난다.



'벌레와 내가 사는 이유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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