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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18. 2023

28. 삶의 의미, 개똥철학이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28. 삶의 의미, 개똥철학이다.     



        삶은 무엇인가? 


        선각자들의 지혜가 담긴 수많은 명언이 있다. ‘맞는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철학이 고대부터 시작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알고자 하였다.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토마스 아퀴나스, 스피노자, 흄, 로크, 칸트, 헤겔, 베르그송, 니체, 스티븐 와인버그 등 위대한 철학자가 수없이 묻고 고민하고 답하였다.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궤변이 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이 된다. 지혜와 무식이 위대한 철학자들 모두에게 나타난다. 


        사는 동안 끊임없이 확신을 찾아가지만, 알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의미를 알고 죽는다면 가치가 있고, 알지 못하고 죽으면 인생의 가치가 없는 것인지 판단을 할 수 없다. 인간이 삶의 의미를 모르고 살았다고 해서 신 앞에서 죄의식을 가지고, 용서를 구하고,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신이도 신이고, 거두신 이도 신이오니 신의 이름이 찬송을 받아야만 한다. 신을 원망하지 아니한다(욥기 1:21-22). 삶의 의미가 신에게 있다는 것은 인간을 옭아매기 위한 거짓으로 가득한 궤변이다.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 삶의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죽지 못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깨달음이 왔다. 부처가 되었다면 침묵에서 벗어나 말할 수 있고, 궤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알았다면, 과거의 삶은 없어지는 것이고, 현재의 삶이 의미 있는 그 무엇이 되어 나가는 것인가? 


        그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해탈하여도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정통이든, 이단이든, 사이비든 뭐든 ‘그냥, 믿어라’ 하는 것이다. 거짓말로 가득한 궤변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상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가 능력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재수 없는 놈’이라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기 잘난 맛에 그렇게 산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쉽게 무시하고 산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찾은 인생의 의미에 동의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침묵에서 벗어나 궤변으로 가득한 말이 많아지는 이유이다. 자기 인생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인생에 이러쿵저러쿵 개입하는 짓거리는 대부분 사람이 쉽게 하는 짓이다.     



        질병을 갖고 버티면서 제주에서 산다. 처음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본다. 의미를 찾았지만, 그 의미를 달성할 수 없는 현실에 자책할 수도 있다. 의미는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똑같은 삶의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런 것이 있다면 이상적으로 시스템화 된 사회, 유토피아가 될 수는 있지만, 무미건조한 삶으로 새로운 고통을 맛보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 나설 것이다. 

        내 삶의 의미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만의 경험으로 울고, 웃고, 화내고, 소리치기 때문이다. 내 삶의 의미가 너에게는 의미가 없다. 지금 죽지 않고 살고 싶다고 집착 아닌 집착으로 나는 매달리고 있다. 인생의 의미를 더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지금 가진 인생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삶의 시간, 장소, 환경에 따라 상대적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헤겔은 영원한 진리는 없다고 하였다. 약 400년 전의 지동설로 인하여 수천 년간 진리였던 천동설은 무너졌다.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는 없는 것이다. 지금 가진 의미는 헛것일 수 있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무의식으로 인하여 인간은 이성적인 철학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결국 모두가 개똥철학이다.


        지금 질병으로 내가 원한 삶의 의미는 진짜 내가 원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현실을 적당히 타협하고 합리화는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고 에너지를 쏟아붓지 말고 그냥 살아도 된다. 남이 만들어 놓은 인생의 의미는 더욱 부질없는 의미이다. 



'삶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알 수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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