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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19. 2023

30. 욕망, 행복해야 돼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30. 욕망, 행복해야 돼   



        행복하게 사는 인생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행복은 공동체로서의 ‘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존재로서 ‘나’라는 존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되었든 내가 행복해야 한다. 


    “I am not happy.”


     말 한마디로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머리가 나쁜 것이다. 손과 발이 고생하는 삶이다. 희생은 개뿔하고 던져버려야 한다. 참고 또 참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피할 수 있는 불행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자아가 부족한 사람이다. 자아는 본능과 도덕적 규범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균형을 맞추어 나가고자 하는 의지이다.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들이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즐거움과 쾌락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보았으면 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초라해진다. 필요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갖고 있어도 불만이고, 갖지 못해서도 불만이다. 지금 쥐고 있는 것이 하찮게 보인다. 원하지 않았던 삶이 된다.


         “I am not happy”


         욕망의 노예가 된 모습이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벌게진다.     




        사람은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면, 가지고 싶은 것이 또 생긴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다. 더 갖고 싶은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자기보다 더 행복한 사람을 인정하기 싫다. 

        자기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질투심으로 다가온다. 질투는 욕심이 되고, 욕심이 욕망을 낳는다. 죽는 날까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때로는 무시해도 되는 사소한 욕망이 칼날이 되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욕심이 잉태하여 사망을 낳는다(야고보서 1:15). 


        본인도 죽는 날까지 쫓아다니다가 죽는다. 행복은 이미 자기 손안에 있지만, 조금도 알지 못한다. 욕망이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고 죽음으로 끝나게 하는 것이다.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심이지만, 욕심이 욕망으로 변하는 순간에 행복은 절대로 가질 수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으면 끝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 끊임없이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적절한 욕심은 의욕으로 다가온다. 적정선을 넘어서면 통제가 어려워진다. 

        욕망으로 치달려 가는 마음을 일시적으로 끊어야 할 때 우리에게 힐링이 필요한 것이다. 자연을 벗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이다. 삶에 대한 욕심을 욕망으로 가져가지 않고 긴 호흡으로 손에 쥔 것에 만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것이 힐링의 시간이다. 욕망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원초적인 자연에서 비로소 행복이 찾아지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유를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감성이다. 태초에 인류는 에덴동산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자연을 호흡하면서 살았다(창세기 2장).      



        질병으로 제주에 내려오면서 끝이라 생각하였다. 제주에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내려왔다. 한라산 숲을 찾았다. 제주에서 하루가 가고, 일 년이 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고 싶은 것은 적어지고,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점점 커졌다. 

        불행이라 생각하였던 그 모든 것은 행복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명예와 권력, 부에 대한 집착은 욕망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행복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욕망이 사라지면서 생긴 것이다. 

        다시 건강이 회복되면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욕망이 유혹으로 올 것이다. 서울로 올라가지 않는 이유이다. 서울을 떠나 이곳에 사는 것은 행복하게 살겠다는 욕심이다.


"욕망이 차 오른다. I am not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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