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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21. 2023

37. 생존, 뱀이 허물을 벗는 이유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37. 생존, 뱀이 허물을 벗는 이유


 

        사람은 자기 인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너’나 ‘나’나 오늘은 처음 살아보는 날이다. 


        그런데 인생을 아는 척한다.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준 부모를 포함한 그 어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삶은 정답이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잔소리인 이유이다. 자기 인생을 말랑말랑하게 사는 사람 없다. 이를 악물고 사는 것이다. 


        늘 다니던 길도 눈이 내리거나, 비가 내리면 처음 가보는 길처럼 흥미로울 때가 있다. 어릴 때 뛰어놀던 그 길이 어른이 되어 가보면 새롭다. 어렸을 때 걸어본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을 완벽하게 아는 것이 아니다. 

        삶은 늘 새로운 길이다. 인생은 그 나이에서 누구나가 처음 가는 길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조언해주는 윗사람의 관심을 진짜로 받아들였다.      



        세상의 모든 이들은 자기들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중이다.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 즉각적인 선택이 매 순간에 있었을 뿐이다. 삶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기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거짓된 삶을 볼 뿐이다.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던 신념은 대부분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 이기적인 선택이 기준이었다. 

        개인, 단체, 사회, 국가기관 모두가 자기들의 즐거움과 이익,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사랑, 희생, 도리 같은 뭔가 정의로운 말로 포장한다. 상대가 속을수록 흥분되는 것이며, 자신이 은폐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가까운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일수록 이용하기가 더 쉬운 것이다. ‘진짜 나를 위한 것이었어?’ 따지고 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치료 과정에서 죽을 수도 있는 그런 백혈병이 발생하였고, 항암을 하면서 생명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이 나왔다. 보험금 계약자가 나와 다르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험금은 항암 치료비로 쓸 수 없었다. 계약자가 자기 것임을 주장하여 가지고 갔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긴 시간 동안 나의 질병을 기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혼란스럽게 하였다. 


        나의 삶이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을 지도 모른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나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 말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병든 자에게 인정은 없었다. 체력이 떨어져 힘들어도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한다. ‘나 몰라라’ 하지 못해, 시간을 나누어 쓰다가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관계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야 했는데, 버리지 못한 잘못이다. 죽을병 걸린 소식이 전해지자, 나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먼저 연락을 끊는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 안 간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면 알수록 생각이 다른 것을 알고, 이질감을 느끼면서 관계가 서먹해졌다. 서울의 생활에 미련을 갖지 않도록 싹을 잘라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기억에 내가 남아 있는 것이 싫어졌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이 왜 산에 들어가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지 이해가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다른 사람의 쾌락과 즐거움을 알 수가 없다. 오로지 자신만의 쾌락을 알 수가 있다. ‘같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개인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끝까지 잔인하고 부당한 마음을 숨기고, 자기들 방식을 고집한다.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일방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발목을 잡고, 미혹한다. 겉모습만 보고 선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그 약함을 이용하는 것이다.      



        인생 전반전에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과의 관계에 오류가 있음을 알았다. “너만 잘살면 돼” 하는 것은 위장된 말이었다. 사람들은 길들여 살기를 원할 뿐이었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길들인다는 것을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길들인 관계”에는 “책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길들이는 조언을 하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조언을 따르지만, 맞는 것보다는 틀린 경우가 더 많다. 

        본인들도 그렇게 살지 않는다. 자식이 부모의 말을 버거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어른 역할을 다하는 모습은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운명에 대해서 말을 아껴야 한다. 무책임한 관계를 끊어야 한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인생의 고약함은 버려야 한다. 

        불협화음으로 얽히고 섞인 인연은 끊어야 한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사는 것인지 모른다.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허물을 벗어야만 뱀은 다시 태어나고 성장할 수 있다. 굴레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노골적으로 살고자 하였다. 


        ‘백혈병’이라는 핑계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즐거움은 점점 늘어만 갔다. 제주에서 숲속을 걷고, 해안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사는 삶이 축복임을 알았다. 젊었을 때부터 이렇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생존 과정이었다.     


"너나 나나, 오늘 처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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