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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20. 2023

33. 숲속의 두 갈래 길, 어디든 좋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33. 숲속의 두갈래 길, 어디든 좋다.


   

        삶은 선택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인생이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 한 순간도 인정하기 싫은 반응이다. 신의 말씀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17). 어쩌면 신이 인간의 DNA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죽음을 새겨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인생 계획을 짜면서 제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면서 젊은 날에 선택하지 않았던,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 

        살면서 어떤 순간도 망설일 필요가 없다. 후회라는 것은 선택하고 그 길을 가봐야 생기는 것이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 봐야 안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마찬가지이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잘하는 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해 보고 할 수 없는 일이면, 다시 되돌아 다른 길을 가면 된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죽는 날까지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은 뭔지 모르고 죽는 경우도 많다. 


        후회라는 감정보다 더 무서운 일은, 조금만 더 인내하면 결과를 보았을 터인데 가던 길을 포기하고 뒤돌아 가는 경우이다. 이 또한 알 수가 없는 것이라서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번 산다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한 것 같지만, 주어진 시간은 의외로 길 수도 있다.      



        매일매일을 선과 악, 옳거나 그르거나, 더하기 빼기, Yes or Not, 두 가지 중의 하나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은 직관적이다. 직관은 영적인 본능이다.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세기 2:7)는 말은 인간 외에는 직관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생을 찾아가는 것이다. 

        컴퓨터는 정보처리를 0과 1, 두 가지 중의 하나로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직관적 판단이 컴퓨터 기술로 나타난다면 AI는 생식기능이 없을 뿐이지, 새로운 인류의 탄생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자기와 다른 종류 인간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관은 AI가 가질 수 없다. 직관이란 개념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선함과 악함, 삶과 죽음의 판단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AI에 영혼을 줄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이라서 잘하는 것이 아니다. 잘하는 일이라서 하고 싶은 것이다.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는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다. 내가 뭘 잘하는지 본인도 알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것을 타인이 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우습지만 컴퓨터의 직관에 내 삶을 맡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사람들은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평생 헷갈리면서 그냥 산다.     



        30대에 IT 사업하다 실패하고, 40살이 되어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부동산업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동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40살이 되도록 마지못해 길을 걸었고, 이거는 아니다 싶어서 뒤돌아갔고, 처음부터 다시 길을 걸었다. 

        새롭게 시작한 길은 재미가 있었다. 길은 놀이터였다. 51살이 되었을 때, 질병이 길을 막았다. 더는 걸을 수 없음을 알았고, 이렇게 끝날 수 있음을 알았다. 놀란 가슴에 주저앉아 울었다. 장애물 달리기에 다리가 걸려 넘어진 것이다.     



        일어나서 다시 걸어 볼 것인지, 그냥 주저앉아 있을 것인지 선택이다. 

        장애물 경기는 선수가 넘어지도록 만들었고, 자빠져도 일어나서 달리는 경기이다. 탈탈 털고 일어나 다시 달리면 되는 것이다.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서 끝까지 달리는 사람에게 격한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인생은 기록경기가 아니다. 

        남보다 늦어도 된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남보다 늦게 숲속에 있는 길을 찾아도 괜찮다. 본인의 선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삶의 시작은 자기가 한 선택이 아니었을지라도, 그 이후로 걸어가는 길은 자신의 선택이다. 장애물은 살다 보면 늘 상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라서 잘하는 것이 아니다. 잘하는 일이라서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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