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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22. 2023

38. 행복, 일단 살아야 한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38. 행복, 일단 살아야 한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세상에 어느 날 던져진 존재이다. 

        그렇게 시작한 인생이다. 


        얼떨결에 시작한 인생이지만, 성공해보자고 분초를 다투며 살았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다. 멋진 인생으로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정신없이 사는 중에 백혈병이 발병하였고,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일상의 단조로운 행위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침밥과 세수가 감동이었다. 배설할 수 있고, 옷의 단추를 여미는 것이, 걷는 것도, 누운 것도, 창밖을 보고,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람을 보고, 떨어지는 빗물에 한숨 쉬고 그냥 모든 것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채우고자 한 욕심이 신기루였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사라졌다.      



        단순한 것이 행복이었다. 

        행복을 복잡하게 해석하고 찾아다닌 것이 문제였다. 

        비밀도 아닌데, 행복은 우리 곁에 바짝 붙어 숨어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당연하듯이 살아왔던 순간들이 벼락 맞은 듯이 번쩍이며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 다가왔다. 이성과 감성에 변화가 생기었다. 반드시 죽는다고 해서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란 진부한 진리가 깨달음으로 온 것이다. 

        사춘기 시절에 개똥철학으로 고민했던 것들이 50살이 넘어서 정리가 되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끼리 아침이면 인사를 한다. 항암의 부작용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서로의 모습을 본다. 

        초췌하게 죽어가는 모습이다. 머리가 빠지고, 살이 빠지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화장실이 버거운 서로의 상황을 말없이 눈치껏 안다. 


        CT 촬영하고자 입원 병동인 21층 무균실에서 2층으로 이동한다고 하여 체력이 바닥난 나는 침대에 실려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였다. 무균실 밖으로 나온 것이다. 갑자기 공기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훅 들어왔다. 산속의 공기와도 같은 맑고 청량한 느낌을 받았다.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침대에 실려 나온 내가 어떤 환자인가 하는 눈빛으로 흘끗 본다. 코미디 같지만, 그 사람들 사이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눈물이 나왔다. 그냥 무리에 섞여 있는 것이 이 정도의 감동인지 몰랐다.      



        제주에서 2년 정도의 생활할 때이다. 병원 일정 외에는 서울을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을 휴학하고 군대 입대하는 아들의 입영을 보기 위해 올라갔다. 

        서울에서 논산까지 같이 이동하였고, 부대 앞에서 헤어졌다. 멋쩍게 악수하고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번 나온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살아있어서 너의 뒷모습을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너무나 당연해서 평소에 인식조차 하지 않았던 살아있다는 느낌이 눈물을 통곡으로 변하게 하였다.     




        부, 권력, 명예 등을 추구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은 모든 이들에게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감정 소비 없이 그냥 살아도 되는 것이었다. 

        가장 단순한 삶이, 가장 재밌는 인생이었다. 평생을 신념으로 담고 온 것이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이성적 변화이다. 사람이 행복의 기준으로 즐거움과 재미를 선택한다면, 부담스러운 강박적 관념은 최대한 벗어야 한다. 


        지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똥폼 허세도 버릴 수 있었다. 체면을 차리지 않는 삶이 좋을 수도 있다. 

        책임과 의무를 선택하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겹고, 고통스럽고, 벅차고, 힘들어하면서 사는 것은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Show Window’와 같은 인생을 버려야 한다. 행복을 위해 지켜야 할 가장 단순한 것은, 내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할려면, 일단 살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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