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39. 제주 생활, 단순 하다. 그냥논다.
삶은 버겁다.
삶의 고달픔은 쉬지 않고 온다.
하루하루가 버겁게 다가온다.
대부분 번뇌는 뭐가 되었든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감각에서 시작한다. 불교에서는 감각을 눈, 코, 귀, 혀, 몸, 생각의 6가지로 정리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감각이 작동한다. 차를 마시면서, 떠들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 마음에 있든 없든 말을 주고받아야 한다.
스트레스이다. 백혈병이 걸리고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보고 싶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보이지 말고, 나도 아무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번잡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것도 부대낄 것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깊어질수록 고민 또는 번뇌가 사라진다. 지역의 특성상 사회적 관계 대부분이 단절되어 있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라 할 수 있지만, 물리적 거리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 곳이다.
서울에서는 삶을 단순화하고자 하여도 할 수 없었고,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생활이었다. 어떻게 되었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일 이야기가 나오고, 상대의 고민을 들어야 하고, 뭔가 그럴싸한 말을 해야 하고,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제주에서는 이것이 없다. 원하는 삶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하루가 단순해진다.
사람을 사귈 필요도 못 느낀다. 이런저런 이유로 명함을 주어도 예의상 받기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연을 맺자며 다가온 사람들이 있어도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의 사업적 이득을 도모하기 위해 부동산 전문가를 찾아오는 것이다.
또는 자기들 사업에 참여하도록 꼬시는 것이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감언이설로 설득한다. 모른척한다.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므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로 응대해 준다.
나를 속였다고, 그들 눈에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기대 자체가 없으므로 마음에 스트레스가 없다. 그리고 끝이다. 나의 연락을 기다리겠지만, 그런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다. 또 만나준다. 제주에서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계속 받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새롭게 사회적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관계가 단순해지면서 삶이 쉬워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의 지인들도 연락이 줄어들고 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제주에서 투병을 핑계로 은퇴한 나에게 마땅히 던질 말이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의 연락 없음을 즐긴다.
“제주에서의 삶은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숲이나 해안 길을 산책하고, 점심 먹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 먹고 넷플릭스 보거나 책을 읽다가 잔다.
일주일에 두 번 골프를 즐기고, 세 번은 수영한다. 학기 중에 일주일에 한 번 강의하러 서울 올라간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삶이다.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간다. 생활의 궤도에 변수가 없다. 사람에 대한 변수가 없다. 서울에서 살 때는 수많은 변수에 발 맞추어 돈과 시간을 정신없이 쏟아부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인 줄 알고 살았지만, 삶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시간 낭비였다.
돈, 일, 인간관계, 사업, 가족, 명예, 성공, 야망에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삶을 복잡하게 해석하면서 전반전 보냈다. 밤새 고민하고 잠을 뒤척이면서 살았다. 일부러 복잡하게 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질척이는 인생이었고 병들었다. 복잡한 삶을 선택한 대가였다. 구차스럽게 변명은 필요 없다.
제주에서의 단순함이 좋다.
삶이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라고 하는 자기 위로는 말장난이었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있다. 병에 대한 미움과 삶의 버거움이 사라지고 있다. 짊어진 등짐이 없으니 어디든 쉽게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준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은 삶에 대한 여행은 시간만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래도 전반전보다 더 잘 살 자신이 있다.
"번뇌는 보고, 듣고, 말하는, 감각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