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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26. 2023

47. 은퇴 설계, 조기 퇴직 꿈이었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47. 은퇴 설계, 조기 퇴직 꿈이었다.      



        “은퇴계획을 세우고 은퇴해라”, “은퇴하고 할 일을 준비하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라” “도시에 살아야 한다.” “배우자와 대화를 많이 하라” “어디서, 누구와 늙어 갈 것인지 정해라” “생활비는 마련하라” 등등 후반전 삶을 살기 위한 은퇴 설계에 참고할 만한 조언들이 마치 진리처럼 퍼져있다.

        은퇴가 무엇인지 모르므로 들으나 마나 한 유언비어이다.      


        “착하게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 “신의를 지켜라” “책임감 있게 살아라” “정의롭게 살아라” “최선을 다해라” 등등 전반전 삶을 살기 위한 조언들이 조언으로 가치가 있었는지 생각하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에 있는 선한 말일 뿐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은퇴 설계에 대한 조언들은 대부분 말장난이다.


        “은퇴하고 전원생활 하고 싶다.”

        “은퇴하고 놀고 싶다.”라고 한다면 30년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고, 30년을 놀아야 한다.


        벌써 막막하다.


        은퇴계획에는 생각할 수 없는 많은 변수를 통제하고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설계해야 한다. “은퇴계획”을 세운다고 하지만, 대부분 정년퇴직하면 ‘뭐 해 먹고 살지’와 같은 직업에 대한 계획이 대부분이다.

        젊었을 때부터 직업을 고민하면서, 이래저래 바꾸어 가면서 살아왔다. 그것을 은퇴 설계라 할 수는 없다.     


 

        은퇴하고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직장을 다니면서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은퇴 설계를 하고 은퇴하는 사람도 있겠지마는 극소수이다.

        그 극소수도 대부분 Job change이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일부 임직원에 해당하는 것이다. 90%의 직장인들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결국 우리가 이야기하는 은퇴 설계 대부분은 직업 교육이다.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것이다. 일하다가 죽는 것이 은퇴 설계의 숨은 뜻이라면 잘못된 판단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모든 인류에게 일만 하다가 죽어야 하는 신의 저주가 있었다고(창세기 3:19) 하면, 믿음과 관계없이 예수의 탄생으로 모든 인류는 저주에서 풀려난 것이다(요한복음 1:29).

        인간의 선택의지와 관계없이 절대적인 원죄가 있었다면, 용서도 조건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은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인간이 왜 사는지?’에 대한 삶의 관점에서 은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인간으로 가지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한다. 사람은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라는 시간에 갇혀 산다.


        인생 후반전은 살아온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과거에서는 미래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다. 그래서 시간으로 말하지 않고, 돈과 직업으로 ‘show’ 하면서 살아 온 것이다. 후반전은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 그것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다.

        후반전의 끝은 죽음이다. 살아있다는 느낌은 그때까지이다. 왜 사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살지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일 만하다 죽는 것은 답이 아니다.

        채찍질 당하는 말의 목을 끌어안고 대성통곡한 니체는 일 만하다 죽어야 하는 말의 운명이 불쌍해서였다.    


 

        부부관계는 좋지만, 형제의 관계는 안 좋을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좋지만, 부부관계가 안 좋을 수도 있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좋을 수도, 다 나쁠 수 없다. 밖으로 드러난 것도 있고, 숨겨져 있는 것도 있다.         흔히들 은퇴 설계하면서 “배우자와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좋지 않은 관계는 인생 후반전에 최악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여도 나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개인마다 합리적인 이유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보는 관점은 나만의 것이다. 보편적이지 않다.

        혼자라고 나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취미가 뭔지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100세 시대의 맞는 인생 취미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 당황스러운 것이다. 놀아보지 않은 사람이 은퇴했다고 해서 갑자기 잘 놀 수는 없다. 늙을수록 입을 닫으라는 말은 평생 버릇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다는 헛소리이다. 말을 줄이고 지갑을 열라는 것은 경제적 자유를 얻어 돈의 지출에 부담 없어야 가능한 것이다. 병원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죽었어야 할 노인이 병원이 가까워서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것은 삶의 행복이 아니라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 ‘잘 살려면’ 어떤 규칙이 있는 듯이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이런 규칙들은 대부분 말장난이다.

        이것을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멍청한 자가 떠드는 거짓부렁인데,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대부분 사람은 그 말을 믿는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은퇴할 때 방침이 있다면 딱 하나이다. “한번 살다가는 인생 재미있게 살다 죽자”이다. 인생 후반전을 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규칙이다.      


"한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살다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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