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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27. 2023

48. 내 인생, 내가 살았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48. 내 인생, 내가 살았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 자기 삶을 뒤돌아보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죽어갈까? 

        남자 여자 다를까?


        죽은 사람하고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어 알 수 없지만, 회한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잘은 모르지만, 만약에 있다면 가장 큰 회한은 아마도 ‘내가 잘 못 살았어!’와 같은 느낌일 것이다. 


        죽을 때가 돼서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니 아쉬움이 큰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자연적인 욕구를 도덕적 관습과 사회적 규범에 옭아매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다. 

        한번 사는 인생이었는데 아쉬움이 큰 것이다.     



        부부가 있다. 

        ‘남자가 죽어가면서 여자에게 듣고 싶은 말은 ‘당신을 존경합니다.’ 

        여자가 죽어가면서 남자에게 듣고 싶은 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한다. 


        이런 말을 누가 처음 사용하였는지 모르지만, 삶의 기본적 가치에 대한 남녀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평소에 남자는 자신을 존경하는 여자에게 끌리고, 여자는 사랑을 주는 남자에게 끌린다. 

        ‘사랑을 표현해 줘라’ ‘인정을 해달라’고 남녀가 다투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존경받을 짓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존경할 마음도 없는 것이다. 사랑받을 짓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사랑스러운 마음이 안 생기는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같은 것이다. 남녀가 만나 거침없이 사랑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석이 다른 것이다.     



        흠 없는 인간은 없다. 가끔 부끄러운 일도 하면서 어떻게든 죽으라고 고생하여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극복한 것이다. 명예, 돈, 사랑은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손쉽게 하는 가장 강력한 추진 동기이다.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들 자기 인생에 이를 악물고 산다. 그래도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사람은 소수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발버둥 쳐서 이루었는데, 잃은 것이 있다. 돈을 벌었는데 사랑이 떠난 것이다. 뭔가 어긋난 듯한 인생이다. 밀려오는 허탈감이 가득하다. 존경과 사랑은 물 건너간 것이다.      




        회한은 삶을 스스로 주인으로 살지 못하였음에 대한 고백이다. 

        성공했어도 지루함이 가득한 삶인 것이다.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 하면서 재미나게 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희망을 억누르고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도망자’로 산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 참고 견디는 인생을 선택하였다. 


        따분하고 지루한 인생이지만, 익숙한 것에 몸을 맡기고 변화와 도전을 멀리하였다. 그것이 무난하다고 서로서로 위로하였다. ‘잘 산 인생’이라고 격려하며 묵인하였다. 불행하다 생각하지 말자고 주문을 거는 것이다. 속에 잠자고 있는 것을 깨워 근심에 빠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괜찮은 인간으로 산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전반전을 살아온 인생에 술잔을 보내며 ‘수고했다’ 위로한다. 그러나 인생 후반전은 그렇게 살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짧다. 비겁하게 도망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말 슬픈 인생은 또 도망가면서 스스로 ‘잘 산 인생’이라 위로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슬픈 것은 이런 생각 조차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겁먹지도 말고, 떨지도 말자. 이제 젊었을 때부터 가슴에 품었던 그것을 해 볼 수 있는 마지막이자, 첫 기회이다. 

        마음에 없던 것을 지키기 위해 쏟아부은 에너지에 지쳐버린 인생이 전반전이었다. 후반전도 그렇게 살면 죽는 순간에 회한의 눈물로 ‘이게 아니었어!’ 고백할 것이다. 전반전에 살아오면서 집중하였던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미 알고 있다. 


        명함으로 평가받은 삶이 인질처럼 구속되어 있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도 버티어야만 한다고 스스로 gaslighting 하였다. 출세 한번 해 보겠다고 살아온 인생은 바뀌어 가는 명함에 산전수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벅찬 감정은 지갑에 들어오는 돈의 숫자가 커질 때이고, 씁쓸한 감정은 돈의 노예로 사는 것이었다. 그 어떤 삶일지라도 남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인생 파도가 있다. 따라서 세상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선택은 나의 몫이다.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나중으로 미룰 수 있다. 천천히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마는 기회는 별로 없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른다. 찰나의 시간만 주어진 것이다. 갈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는 선택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그것을 향해 걸을 수 있는 마지막 도전이다. 

        가야 할 이유는 하나지만, 가지 못하는 이유는 수백 가지 있다. 거창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특별하지 않다. 죽음을 앞두고 ‘잘못 살았다.’라고 고백한다면 그것의 진짜 이유는 ‘포기한 것’ 때문이다. 

        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은 사람은 본인이다. 인생 후반전은 무엇이 되었든 삶에 온 마지막 기회이다. 


"내 인생 내가 살았다.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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