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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27. 2023

49. 공들인 관계, 헛수고 였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49. 공들인 관계, 헛수고 였다.



        인적 네트워크가 사회적 성공의 기본이다. 

        그러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왔다. 

        인간관계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시간을 함께 나눌수록 좋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낌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 조직에서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 직원들 간에 상호 예의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올라가면 출세한 것이었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 공들였다.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분야와 직군에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 인간관계는 계획한 삶의 모든 영역에 선한 영향을 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인생 전반전을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우습게도 위로 올라가고, 성공이란 타이틀이 오는 순간에 다들 알아서 명함을 들고 찾아왔다.      



        제주 생활이 길어진다. 아무런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 서울 사무실을 믿음으로 맡기었는데, 나의 배려는 그들의 희생으로 왜곡되어 다가온다. 나의 것을 뺏고, 질투하는 사람으로 꼬여버린 인간관계는 공허했고, 힘들고 어려운 관계를 의리로 유지하는 것은 무모했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지원하고, 잡고 있었던 것이 쪽팔리게 되었다. 

        쉽게 살수도 있었는데, 어려운 삶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고 돌아간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거는 아닌데’ 발가벗겨진 모습으로 알게 되었다. 인생 후반전이 자칫 위기에 빠질 수 있었다. 

        사회생활에서 배신은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악을 생각하지 않으면 인생이 꼬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추켜세워주면 순간 우쭐대지만, 말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오랜 시간 속내를 드러내면서 대화를 나누어야 그 사람을 조금 알 수 있는 것이다. 정성과 시간을 쏟아내는 것은 살아야 할 시간이 많은 젊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설득을 할 필요도 받을 필요도 없다. 

        무언가를 계속 인내하도록 요구한다면, 배려와 인정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사랑과 희생으로 바라보면 죽는 날까지 힘들 수 있다. 그렇게 살 필요 없다. 뭘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인생 계획에 전혀 없었던 그런 삶이다. 

        그런데도 과분하다 싶을 만큼 좋은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많았던 인간관계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조바심이 생기었을 법한 일인데, 오히려 인간관계가 줄어드는 것을 즐긴다. 


        그들에게 잊힌 내가 감사할 뿐이다. 

        새롭게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있는 사람들도 연락하지 않는다. 


        번거로울 뿐이다. 현재 인간관계도 차고 넘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비껴가는 인연을 억지로 잡을 필요는 없다. 인생 후반전은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지나고 나서 한탄할 일을 만들지 말자. 관계를 유지하는데 힘들고 지친다면, 어려운 관계는 버려야 한다. 관계를 부수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면 충분하다. 섭섭할 필요도 없다. 

        새로 오는 관계를 반기지 말고, 있는 관계를 정리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불편하게 옆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생 후반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쓰던, 돈을 써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반전에서는 남보다 빨리 위로 올라가고, 성공하겠다는 욕망이 있었다. 젊음으로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 시간이 있고,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버틸 힘이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보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지독한 어려움을 극복하였을 때의 성취감을 알기 때문에 도전하고 받아들였다. 


        사랑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성공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돈을 벌면 이해할 수 있다고 관계를 유지하고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미움이 수시로 번갈아 나타나면서, 버티는 힘이 고약할 정도로 허술한 것임을 알았다. 신은 인간에게 한 손에 사랑을 주고, 다른 한 손에 미움을 주었다. 끊임없이 장난질 치는 것이 신이다. 거기에 꼭두각시처럼 따라가지 말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감정 소비할 수 없다. 쉬운 결정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최선의 노력을 했어도 관계가 깨어지면 받아들여야 한다. 멀어져 가는 사람에게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사랑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나를 봐야 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을 나에 대한 사랑으로 집중하여야 한다. 나의 삶인 것을 기억하자. 거센 파도가 요동치는 물결에 몸을 맡기지 말자. 

        

        희생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욕심이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위선이다. 


        후반전은 잔잔한 물결에 맡겨야 한다. 수월하게 사는 방법이다. 살아온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부터 조금씩 관계를 정리하여 나가자.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 시간이 후반전에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 보지 말자, 나를 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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