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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27. 2023

50. 남탓 그만하고, 내탓하고 살자.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50. 남탓 그만하고, 내탓하고 살자    



        후반전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란 고민도 하지 말고, 뭔가를 이루려는 생각을 버리고 살아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그런 것에 재능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사람이니 우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멋진 일을 해낸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래서 전반전에서 길을 완전히 잃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청나라 시대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라는 책에 세상살이는 운명의 장난이란 뜻의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는 안다. 성공은 운칠기삼이었다. 동방박사만이 별을 보았듯(마태복음 2:2), 성공한 사람은 우연히 밤하늘의 떨어지는 별을 보고 뛰어갔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천재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짓은 더 쪼잔한 짓이다. 아마도 그들보다 내가 모지리 라는 것을 증명하는 짓이 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성공하였지만, 나의 그릇은 성공을 담기에 너무 작은 것이었다. 남의 밥그릇 쳐다보며 침 흘리는 행동은 버릴 나이가 되었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얻는 치사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어울리지 않게 숟가락 들고 덤비는 쪼잔한 인생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내 것이 아니면 미련을 버려야 한다.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만 남을 수 있다. 공연히 그들 주위에 어정쩡 거리지 말고, 길을 비켜주고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멋진 늙은이로 늙어가는 모습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멋지게 늙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에서 놀라운 일은 언제든지 평범하게 다가왔다. 시끌벅적 이벤트 없이 조용히 다가온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어느 날 문득 느끼는 것이다. 특별한 내가 되어 있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수많은 기회가 후반전에 펼쳐질 것이다. 지금까지 안 죽고 살아 있다면 욕심을 가져도 된다. 쉽게 죽지 않을 것이라 오기를 부려도 된다. 

        남은 시간 멋지게 살 수 있다면 후반전 성공이다. 남은 인생 멋지게 살고 싶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망이다. 건강, 사랑, 돈, 일 등에 있어 점점 하향곡선을 타면서 늙어가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지 분명해지면, 두려움 없어진다. 

        후반전을 준비하면서 ‘병이 있어 안돼’ ‘돈이 없어, 못해’라고 하면서 건강 또는 돈 탓을 할 수 있다. 탓하면서 얻는 것이 없다. 

        성공한 사람은 절대 남 탓을 하지 않는다. 목표는 같아도 과정이 다른 것이다. 


        밥상을 차려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젊었을 때부터 남 탓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 버릇 들이면 죽는 날까지 부모 탓, 사회 탓하면서 산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들고 나타나 반찬 투정하는 사람들이다. 웃음밖에 안 나온다. 전반전을 성공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남 탓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이다. 

        핑계를 찾고,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룻밤에 만리장성 쌓는 일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멋진 늙은이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끊임없이 작은 흐름에 몸을 맡기어야 한다. 어떡하면 멋지게 늙어갈 것인지 고민하고 오늘을 사는 것이다. 늙었어도 매력을 조금씩 발산해 나가야 한다. 

        성공하였지만 왜 성공하였는지 본인들이 잘 모르는 것처럼 가다 보니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늙어가는 것은 그렇게 하루하루 보이지 않는 물결에 멋짐을 맡기는 것이다.      



        멋진 늙은이로 인정받고 싶다면,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철학이 있어야 한다. 사람으로 살고자 하면 왜 사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앎’의 과정이다. 

        생각 없이 돈과 겉모습으로 화려한 후반전으로 살아가는 것은, 뉴스 시간에 사건으로 나오거나 연속극에 나오는 모습이다. 끝은 절규와 비명으로 마지막 반전을 보여준다. 허세가 가득할 뿐, 당당하게 늙어가지 못하는 겁쟁이들이다. 저속한 본능을 따르는 삶이다. 메마른 영혼이 가득한 늙음이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들과 삶의 가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늙어가는 것이 멋과 재미로 다가와야 한다. 이왕 늙어가는 거 폼나게 늙어가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은 ‘왜 사는지’ 알아야 한다.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알아가면서 사는 것이 최고이다. 


"왜, 사는지를 모르면 허구헌날 남탓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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