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신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십일조의 두 얼굴

<Bible IF Story>

by 경국현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라.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말라기 3:10

십일조.
교회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내가 낸 돈이
과연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정말 신이 그것을 바라기라도 한 건지.

어떤 사람은
십일조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
교회가 아니라 돈의 시스템이
그를 삼킨 것이다.


1. 양의 탈을 쓴 늑대

이솝 우화에 나오는 말이지만
성경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니라.”
(마태복음 7:15)

십일조를 외치며
신을 팔아 부를 축적하는 자들.
그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다.


2. 십일조의 성경적 기원

십일조의 최초 기록은
아브라함 이전, 아브람 시절이다.
전쟁 후 재산의 10분의 1을
자기를 도운 왕에게 준다
(창세기 14:20).

이것은 자발적인 '나눔'이지,
제도적 ‘십일조’가 아니다.

정식 십일조의 시초는
야곱에서 시작된다.
꿈속에서 신을 만나고,
복을 약속받은 뒤
“받은 것의 십분의 일을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창세기 28:22).

즉, 먼저 복을 받고
나중에 십일조를 약속한 것이다.


3. 말라기의 논리: 먼저 내라

그러나 말라기에서는
논리가 바뀐다.

“십일조를 내고,
신이 복을 주는지 시험해보라.”

기이하다.
신을 시험하라니.

이 말라기의 화법은
현대 교회에도 남아 있다.
목회자들은 말한다.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반드시 복 주신다.”

이건 투자 제안이다.
“일단 돈을 내보세요.
10배로 돌려드립니다.”
사기꾼의 논리와 뭐가 다른가?


4. 십일조는 누구의 것인가?

성경은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귀속시킨다
(느헤미야 10:37-38).
제사장들은 신의 이름으로
그 재물을 관리했다.

현대 교회도
십일조를 목회자 생활비,
교회 운영비, 선교비로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은 누구도 모른다.

더구나
십일조 외에도
감사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구제헌금…
돈의 종류는
신보다 많다.


5. 지금도 십일조가 필요한가?

국가는 세금을 걷고
복지와 구조를 책임진다.
국가가 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교회가 그 기능을
이중으로 수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소득세로 이미
십의 일이 넘는 돈을
국가에 바치고 있다.

거기에 또 십일조?
이건 수탈에 가깝다.


6. 양심이 있다면

십일조를 고집하려면
다른 헌금은 없애야 한다.
국가가 세금을 안 걷는 조건이라면
십의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내가 버는 돈은
밤낮 없이 일한 대가다.
그 피 묻은 노동의 대가가
‘신의 이름’으로 빠져나간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지금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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