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기억들

마음 속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기억들만 존재한다

by Kyung Mook Choi


사람의 마음 속에는 시계도 달력도 없다.

그곳에는 오직 기억만 있다.

기억은 날짜를 달고 오지 않고, 장소의 좌표를 들고 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어린 시절의 냄새를 맡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장면을 떠올리며,

이미 끝난 사람과 다시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은 커피잔 위로 김이 오르는 순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수십 년 전 겨울 아침의 부엌이 함께 떠오른다.

어머니의 발소리, 창문에 맺힌 성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때의 공기만은 기억 속에 아직 살아 있다.

그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한 겹이다.


기억은 늘 현재형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순간마다

기억은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기억은 낡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될수록 다른 얼굴을 갖는다.

같은 사건인데도

그날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

기억은 매번 새롭게 해석된다.


마음 속에는 공간의 경계도 없다.

한 방 안에 서울과 시골이 동시에 존재하고,

한 숨결 안에 병원 복도와 바닷가가 겹친다.

몸은 여기 있지만

의식은 언제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동에는 비용도 허락도 필요 없다.

단지 어떤 감정 하나면 충분하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기억을 가진 것이 아니라

기억이 우리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어떤 기억은 평생 말을 걸고,

어떤 기억은 침묵 속에서

우리의 선택을 조용히 바꾼다.

우리는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기억은 잊지 않는다.

다만 표면에서 물러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현재를 사는 존재이면서

항상 여러 시간대를 동시에 사는 존재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상처와

내일의 희망을 함께 데리고 걷는다.

마음 속에서는

이미 지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무 충돌 없이 공존한다.


어쩌면 죽음조차도

기억의 관점에서는

완전한 끝이 아닐지 모른다.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머릿속에서

그는 계속 말을 하고, 웃고, 침묵한다.

기억 속의 존재는

시간에 묻히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기억들은

우리 안에 흩어져 있다.

그것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위로가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마음 속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지금 다시 살아나는 기억들만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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