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
AI로 만든 목소리는 더 또렷하고, 합성한 이미지는 더 완벽하고,
기획된 인물은 실제 사람보다 더 믿음직스럽다.
우리는 묻는다.
"이거 진짜야?"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싶다.
"그걸 진짜라고 믿고 싶은 이유는 뭐야?"
매체는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현실을 설계하는 장치다.
권력은 더 이상 무서운 얼굴이 아니다.
감탄을 유도하고, 위로를 제공하며, 정서를 설계하는 ‘이미지 권력’이다.
우리는 매체가 만든 ‘이미지 인간’에게 몰입하고,
그가 실제일 거라 믿으며, ‘그럴 리 없어’라는 신뢰를 바친다.
그래서 실수가 드러나면 실망이 아니라 분노가 터진다.
현실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지가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최근 백종원, 김수현 같은 인물에게 쏟아지는 비판도 그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믿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였고,
그 이미지가 어긋났을 때 대중은 단순한 실망이 아닌, 배신감을 느낀다.
TV는 사람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의 신화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신화가 진짜일 거라 믿고, 감정을 투자한다.
기술은 언제나 권력의 편이었다.
불, 바퀴, 문자, 인쇄술, 라디오, TV, 인터넷…
우리는 기술이 인류의 삶을 밝게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배웠지만,
역사는 언제나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자는 신관이 독점했고,
인쇄술은 종교개혁을 촉발했지만 곧 왕권에 의해 억제되었으며,
라디오는 파시즘과 함께 대중 선동의 도구로 쓰였다.
기술은 언제나 먼저 권력의 손에 들어갔고,
대중은 그 부스러기 위에서 ‘편리’라는 이름의 위안을 얻어왔다.
AI도 마찬가지다.
인간처럼 말하고, 그릴 줄 알고, 생각까지 할 줄 아는 이 기술은
결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다.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권력을 더 확고히 하고 싶은 자들의 손에서 연마되고 있다.
AI는 이미지 권력의 진화형이다.
과거엔 방송국이 사람을 만들었다.
이제는 AI가 사람을 흉내내고, 감정을 설계한다.
가짜 목소리, 가짜 웃음, 가짜 분노, 가짜 인터뷰…
이제 인간은 판단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감정이 먼저 조작되고, 그 다음에야 진실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이것이 AI 권력의 본질이다.
정확한 논리보다, 정확한 ‘느낌’이 먼저 온다.
실제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이 구조는 빠르게 퍼지고 있다.
올리브영 매장의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들이 있다.
예쁘고 잘생긴 ‘일반인처럼 보이는’ 얼굴들은 대부분 AI가 만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얼굴이 ‘진짜보다 더 신뢰받는 표정’을 제공한다.
연예인은 적어도 인간이었다.
실수도 하고, 탈선도 하고, 때로는 사회적 책임을 지기도 한다.
요즘엔 감옥에 가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AI는 무너지지 않는다.
논란도 없고, 실언도 없다.
완벽하게 정제된 존재이다.
계속해서 이상적인 정서를 보여주고,
‘완전무결한 인간’을 시뮬레이션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진짜 인간보다 얘가 더 낫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
권위는 이미지에서 AI로 넘어간다.
대한민국은 이 착시의 실험실이다.
빠른 기술 수용,
집단 정서의 동조성,
높은 매체 의존도,
그리고 ‘사람’보다 ‘이미지’에 열광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미 이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연예인, 정치인, 유튜버, AI 아바타…
‘진짜’보다 ‘기획된 가짜’가 더 사랑받는 문화.
이제는 버추얼 유튜버가 등장해
귀엽고 친근한 외형 뒤에 숨어 사이버렉카 활동까지 하기도 한다.
AI는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책임질 인격이 없으니,
사과할 의무도 없다.
AI 이미지 정치, 감정 알고리즘 권력.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는 이유다.
진짜를 원하는가, 아니면 기분 좋은 가짜를 원하는가?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대중은 진실을 원하는가,
아니면 만족을 원하는가?
후자를 선택하는 순간, 권력은 사실이 아니라 기분을 제공한다.
AI는 바로 그 감정을 가장 정교하게 디자인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건 진짜가 아니라는 걸.
하지만 너무 매끄럽고, 너무 편하고, 너무 기분이 좋다.
그래서 눈을 감는다.
그 순간, 권력은 태어난다.
AI는 무서운 기술이 아니다.
무너지지 않는 이미지, 사과하지 않는 권위,
그리고 인간보다 더 인간을 잘 연기하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권위 앞에
감탄과 ‘좋아요’를 누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