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망했다.”
2400만 구독자의 세계적인 과학 유튜브 채널 Kurzgesagt가 한국의 출산율을 다룬 영상에서 던진 이 한 마디는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외국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출산율 0.72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이대로는 못 낳겠다”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집단 선언이다.
한 한국인이 영상에 댓글을 남겼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는 것, 즉 너무 늦었다는 걸 큰 소리로 말해줬다.”
서울 사는 30대 직장인인 그는
‘안정된 사람’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생존을 위한 고단한 하루를 버티고 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 선택조차 사치로 만든다.
경쟁, 장시간 노동, 집값, 보육비까지.
그 모든 짐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다.
‘미래가 안 보인다’는 말은 더 이상 흔한 푸념이 아니다. 그것은 곧, 계획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4년간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한 영국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문화와 사람들을 사랑했지만,
결국 떠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지치는 교육 시스템. 쉬는 법을 모르는 사회, 닫힌 문화.
그는 말했다.
“그곳을 떠나기 전엔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몰랐다.”
이 말들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신호에 대한 정직한 응답이다.
출산율 0.72는 그 응답의 숫자적 표현이다.
이 사회는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어지는 환경이 아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위험사회’라 했다. 시스템이 불안정할수록, 개인이 떠안아야 할 책임은 커진다.
아이를 낳는 일도 똑같다. 국가가 메우지 못하는 빈틈을, 부모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라 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하다 결국 탈진하는 시대.
이 단어들은 과장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가장 정확히 묘사해주는 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돈을 주면, 낳을 거야.”
지원금, 출산 장려 캠페인.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국가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 결코 믿지 않는다.
출산 장려 영상보다 “여기라면 낳아도 괜찮겠구나”라는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Kurzgesagt는 말했다.
“이미 늦었어요.”
출산율이 당장 반등하더라도,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드시 절망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다시 많아질까?’가 아닌,
‘어떻게 작아지면서도 잘 살 수 있을까?’로.
우리는 과거의 정책들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수도권 집중 완화'?
오래된 말이지만, 실제로는 지방에 일부 기관만 보낸 수준이었다. 그 주변만 성장하고 도시는 바뀌지 않았다.
반면 천안, 아산은 대기업의 이전으로 변화를 겪었다. 결국, 도시를 움직이는 건 행정이 아니라 자본이다.
‘양육의 사회화’?
결국은 노동 구조의 문제다. 자원이 없으니, 수출과 장시간 노동으로 성장해온 한국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노동법 강화와 임금 인상. 그러나 현실의 반응은 뻔하다.
“일은 줄이고, 월급은 더? 그게 되겠어?”
‘주거 안정’?
집값을 잡기 위한 규제가 오히려 임대 시장을 박살냈다.
공공임대는 공급됐지만, 사람들은 기피한다. 위치, 인프라, 그리고 사회적 시선.
정책보다 ‘삶의 질’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평생학습 사회’?
멋진 말이지만 여전히 직업에 귀천을 둔다.
교육에 대한 존중 부족과, 공부의 의미는 결국 “얼마 벌어?”로 귀결된다. 기술학교나 마이스터고에 대한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문제를 정의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진짜 어려운 건 그다음이다.
그 문제를 실제로 바꾸는 일.
이상은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대부분은 그 중간에서 포기한다.
하지만 전환은 거창하게 오지 않는다.
정확히 알고 있는 문제를, 잊지 않고 붙드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버티고, 함께 바꾸는 공동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은 바로 거기다.
출산율 0.72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숫자 뒤에 사람들이 이미 숨을 멈췄다는 사실이다.
이제 모두가,
숨을 되찾기 위한 질문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사회는, 살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