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거면, 그냥 다음에 낳아

by 노경문

대선 국면에 들어선 후보들은 다시 ‘돈’을 꺼내 들었다.
결혼하면 1억을 빌려주고, 첫째 낳으면 유지, 둘째 낳으면 반감, 셋째 낳으면 탕감.

파격적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이를 위한 배려인가,
아니면 절박한 사람을 겨냥한 조건부 대출인가?

낯설지 않은 방식이다.
과거 허경영은 결혼하면 1억을 준다고 했다.
그땐 모두가 웃었다.
이제는 주류 정치인들이 말투를 다듬고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이 공약이 불편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본질을 건드리지 않는다.

한국의 초저출산은 단지 경제 문제가 아니다.
그건 표면일 뿐이고 더 깊은 원인은 이렇다:

과도한 경쟁과 비교 중심의 삶,
성공이 곧 ‘가진 것’로 환원하는 물질 중심 문화,
불확실성과 단절에 대한 정서적 불안.

여기에 돌봄 불신, 경력 단절의 공포, 주거 불안정, 교육비 부담까지 겹친다.
사람들의 질문은 “낳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낳고도 잘 살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이 복잡한 실타래는 그대로 둔 채,
유인책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출산을 삶의 결단이 아니라, 빚을 줄이는 전략처럼 비쳐진다.
생명은 조건이 아니다.

둘째,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 정책은 연간 수조 원이 소요된다.
그 재원은 결국 누군가의 세금이고, 누군가의 복지 축소이며,
누군가의 화폐가치 하락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방식은 과거의 여러 단기성 정책과 닮아 있다.

병사 월급 200만 원은 정의처럼 들렸지만, 간부와의 급여 역전을 낳아 조직의 동기를 무너뜨렸다.
청년 저금리 대출은 가진자의 기회가 되었고,
청년은 더 깊은 부채 구덩이에 빠졌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기분은 좋았지만,
취약 계층에겐 구조적 변화를 남기지 못했다.

말은 달콤했지만, 청사진은 없었다.

또 하나, 시점의 문제가 있다.

이미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둘을 키우며 셋째를 고민하는 부부는?
그 순간, 이들은 '이미 낳은 사람'이 된다.
소급 적용은 불가능하다.

가장 먼저 행동한 사람이 가장 억울해지는 꼴이다.
보상은 없고, 박탈만 남는다.
그건 진보도 보수도 아닌,
무책임이다.

흔히 이런 말이 따라온다.
“그래도 안 주는 것보단 낫잖아.”
하지만 문제는 방식 아닐까.

현금 유인으로 출산은 늘지 않는다.
OECD 다수 연구에서도 일회성 지원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출산은 단순한 경제 행위가 아니다.
그건 ‘이 환경에서 함께 키울 수 있다’는 신뢰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한 결정이다.

더 심각한 부작용도 있다.
경제적 절박함 속에 아이를 낳는 사례가 실제로 늘어날 수 있다.
1억은 누군가에겐 기회지만,
또 다른 이에겐 생존의 마지막 수단일 수 있다.
아이는 돈을 위한 선택지가 되어선 안 된다.

이런 구조는 왜곡을 낳는다:

준비되지 않은 가정에서의 양육 방기,
아이가 보상의 수단이 되는 사회,
책임으로 낳은 이들과 조건으로 낳은 이들 사이의 새로운 분열.

국가가 생명을 성과처럼 계산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체계는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셈이다.

그래서 말한다.
이런 방식은 출산율을 오히려 더 낮출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점점 시스템을 불신하게 되고,
아이를 사회의 요구에 따라 낳는 분위기에 반감을 갖게 된다.
결국 남는 건 숫자에 집착하는 사회,
그리고 정책이 두려운 공동체다.

정치는 묻는다.
“왜 낳지 않느냐?”
하지만 다수가 기다리는 질문은 이것이다.
“낳아도 괜찮을까?”

제도는 아직 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진짜 대안은 무엇이어야 할까?

즉시성과 감정에 호소하는 유혹이 클수록,
우리는 짜임과 지속 가능성을 먼저 물어야 한다.
누가 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오래갈 수 있느냐를 묻는 사유.

좋은 정책은 늘 느리다.
그 효과는 당선 직후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삶 속에서 증명된다.

그래서 정치인에겐 그것을 밀어붙일 용기,
시민에겐 기다려줄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오늘의 선물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기 쉬운 길인가?”
이 질문을 버릇처럼 묻는 문화가 필요하다.

만약 내년에도 출산율이 떨어진다면,
다시 2억을 제안할까.
그 다음엔?
출산하면 국적을 주는가?

그 사회는 더 이상
출산을 유도하는 사회가 아닌,
사랑 없이 생명을 거래하는 사회일 뿐이다.

정책은 돈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다는 신뢰를 쌓는 일이어야 한다.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하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삶을 가능케 하는 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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