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수입차 딜러였다.
첫 직장은 아우디 전시장이었고, 비교적 빠르게 실적을 올렸다. 독일 3사의 인기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고, 차량 공급도 원활했다.
그러다 불쑥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디젤게이트’.
유럽에서 터진 폭스바겐 그룹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한국 시장에도 번졌다.
문제는 한국과 유럽의 인증 기준이 다름에도,
국내에선 폭스바겐과 아우디를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우디 A6처럼 다양한 엔진과 옵션이 있는 모델은
당시 대표 트림 한 대만 검사에 통과하면 전체 라인업이 인증됐다.
이는 모든 수입차 브랜드의 공통된 관행이었다.
그런데 환경부는 갑작스레 인증을 일괄 취소했고, 하루아침에 팔 수 있는 차량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밥그릇이 깨진 순간이었다.
나는 분노보다 허무함이 먼저 밀려왔다.
계약이 무산되고,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할 때마다, 가슴 속에 맺히는 건 억울함이 아니라 막막함이었다.
집에 있는 아내가 떠올랐다.
그땐 신혼이었다. 처음 시작한 살림, 안정되지 않은 수입, 불확실한 미래.
이건 단지 차를 못 판 문제가 아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환경 문제가 아니라,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이었다.
수입차는 너무 손쉽게 두들길 수 있는 타깃이었다.
그래서 BMW로 이직했다.
브랜드를 바꾸면 상황도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구조는 같았다.
그곳에서도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BMW 주차금지’라는 문장이 전국을 떠돌았다.
디젤차 화재 사건이 터진 것이다.
물론 자동차 화재는 일정 확률로 발생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고는 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매일같이 언론에 반복 노출된다면 소비자 인식은 왜곡된다.
당시 언론은 “BMW 또 불났다”는 식의 헤드라인을 연일 쏟아냈다.
정작 상당수 화재는 정비 불량, 불법 튜닝, 혹은 부품 노후로 인한 것이었다.
작년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도 비슷했다.
불이 커진 진짜 원인은 작동하지 않았던 스프링클러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전기차 화재'라는 단어에만 집착했다.
실제 내연기관차의 화재 발생률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지만,
‘전기차 + 화재’는 클릭을 부르는 조합이었다.
오늘 BYD 관련 기사를 보며 그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는 올해 1월 국내 판매를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대도 출고하지 못했다.
새로 적용된 보조금 기준에 따라, 차량은 충전 중 배터리 잔량(SoC) 정보를 외부에 전송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기능이 없는 BYD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고, 정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능을 무상 업데이트하겠다는 확약서를 냈지만, 환경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수천 대의 차량이 평택항에 묶여 있고,
사전 계약한 소비자들은 차량도, 보조금도 받지 못한 채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BYD는 중고차 법인을 먼저 설립해 신차보다 먼저 해당 시장에 진입했다.
우연일까, 예견된 흐름일까.
익숙한 패턴이다.
의도적인 규제, 절묘한 타이밍, 감정을 자극하는 언론기사.
우리는 공정을 말하지만, 실제 보호는 특정 산업에 집중된다.
그 보호는 ‘편향된 설계’의 형태로 나타난다.
며칠 전 트럼프는 전 세계 무역적자국에 관세폭탄을 예고했다.
심지어 동맹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발표를 보며 묘한 공감을 느꼈다.
그가 왜 지금까지“이건 불공정하다”고 외쳐왔는지,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매년 바뀌는 전기차 보조금 기준.
겉으론 탄소 감축과 안전이라 말하지만, 실제론 국산차에 가장 유리한 구조다.
테슬라도 차별에 예외는 아니다. 이제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의 전략 파트너다.
그 둘이 한국에 대해 나눈 대화는,
언젠가 협상 카드가 되어 우리 앞에 돌아올 수 있다.
시장을 움직이는 건 단지 제품이 아니다.
그 제품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규칙, 그 규칙을 만든 의도, 그 의도의 수혜자가 시장을 결정한다.
나는 한때 외제차를 팔던 사람이었다.
그저 좋은 차를 소개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자동차를 고른다는 건,
그 세계의 질서를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가 설계한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
돌아보면, 언제나 그렇게 자국 산업을 지켜왔다.
그 선택이 늘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대가가 국민의 선택권을 줄이고,
특정 기업에 대한 편애로 이어졌다면
꼭 한 번쯤 질문해야 한다.
‘그 보호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