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이었던 시절,
나의 사내 별명은 ‘진상처리반’이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 엉뚱한 질문만 던지는 사람,
제멋대로 해놓고 결국엔 남 탓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데 유독 강했다.
지금은 프랜차이즈 대표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맹점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그런 이들과 마주한다.
묻긴 하지만, 듣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정리해서 간단하게 문자로 다시 주세요.”
“그럼 그대로 지금 진행해도 되는 거죠?”
“저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죠?”
이미 설명했는데도 또 묻는다.
정작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확신, 정확히 말하면 불안에 대한 해소다.
겉으로는 조언을 구하지만,
속으로는 확인된 결과를 원한다.
방향보다는 정답을,
판단보다는 보증을 바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설명을 들었으면서도 자기 방식대로 움직이고,
결정을 맡겨놓고, 일이 틀어지면 태도가 바뀐다.
순조로울 땐 누구보다 공손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상황이 어긋나는 순간,
“그때 그렇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라는 말이 돌아온다.
나는 배웠다.
이런 이들에겐 절대 결정을 대신 내려주면 안 된다는 것을.
상대가 진짜 조언을 원하는지,
아니면 책임을 떠넘길 명분을 찾는 건지,
먼저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판단을 유보한다.
“참고만 해주세요.”
“보통은 이렇게 하시지만, 선택은 대표님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결제는 무통장만 가능한 점 참고 부탁드리며, 진행 여부는 대표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친절하되, 경계를 분명히 한다.
이런 유형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하나의 패턴이자,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이다.
왜 이렇게 많아졌을까?
첫째,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믿을 기준은 희미하다.
결정은 늘 리스크를 동반한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이게 맞죠?”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책임 없는 확신을 구한다.
둘째, 책임감이 무뎌졌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결과는 사회가 감싸는 구조.
자유는 커졌지만, 책임은 얇아졌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지 그랬어요?”
라는 말로 태세를 바꾼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흐름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모호한 질문으로 말을 유도하고,
실수 하나를 잡아 책임을 돌린다.
당신의 선의는
언젠가 책임 회피의 증거로 둔갑한다.
처음엔 성실하고, 겸손하고, 열심히 배우는 사람처럼 군다.
그러나 일이 어긋나면 돌변한다.
그 순간, 당신은 그들의 방패가 되고,
보상의 대상이 된다.
이들의 말투 뒤에는
또 하나의 그림자가 있다.
지나치게 신중하고, 자꾸 의심하고,
설명을 해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 묻는다.
이해력의 문제가 아니다.
두려움에 가까운 불안이다.
나는 생각한다.
이들 중엔
과거에 누군가에게 속았던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을 맡겼다가 데인 기억이
불신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결정 자체를 회피하며
묻고 또 묻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킨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나의 실수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빴다.”
“운이 없었다.”
모든 책임은 바깥으로 향한다.
그렇기에 패턴은 반복된다.
질문, 확인, 의심.
그리고 일이 틀어지면
“그때 그렇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이들은 주도적으로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삶의 전략으로 삼았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걸 모른다.
오히려 자신을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 믿는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쯤 되면 나는 판단한다.
문제는 말투가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선을 긋는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방식은 이렇고, 결정은 마음 가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온화한 방어이자,
책임을 넘기려는 질문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해답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친절한 말 뒤에 선을 긋는다.
조언은 하되, 결정은 맡기고.
내 언어가 누군가의 무기나 방패가 되지 않도록.
그럼에도, 그런 이들 중에는
시간이 지나 마음을 열고, 책임을 배우며 잘 자리 잡는 사람도 있다.
“그땐 죄송했고, 지금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풀린다.
그래서 나는 선을 긋되, 문은 닫지 않는다.
나를 믿고 따라준 이들에게는 언제나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