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제품을 사는 게 아니다.
망설임은 다뤄지고, 감정의 끌림은 설계된다.
우리는 정보를 통해 선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통해 먼저 납득하고
그 뒤에야 논리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어떤 상품을 마주했을 때,
마음속엔 이미
“괜찮다” 혹은 “별로다”는 기분이 먼저 스친다.
그 느낌은,
조명과 점원의 태도,
가격표의 말투,
제품의 색감이 조용히 직조해낸 결과다.
사람은, 듣기 전에 이미 납득한다.
납득은 의식보다 빠르게 무의식을 따라 흐른다.
말보다 먼저, 분위기가 결정권을 쥔다.
영업은 그 감정의 무대를 만드는 일이다.
수입차를 팔던 시절,
가격이나 지불 방식에 대한 질문이 없으면
나는 마음속으로 50%를 제외했다.
급한 사람일수록 숫자부터 물었다.
결정은 언제나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서 시작된다.
많은 영업인과 마케터들이 더 많이 설명하면 더 많이 설득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설명은, 이미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설득은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며,
말은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말수가 적고, 단답형으로 일관하는 고객은
더 어렵다.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감정을 일부러 흔들어야 한다.
날카로운 질문, 약간의 도발, 의도된 불편함.
스스로 말하지 않던 감정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쓴다.
위험하지만, 종종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모든 고객이 감정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살 마음 없이 들어온 사람,
그저 흥미로 지나가는 사람,
질문은 많지만 움직이지 않는 사람.
창업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이들을 자주 만난다.
정작 중요한 건 묻지 않고, 운영방법만 파고든다.
그들의 질문은 결정이 아닌, 연기다.
마케터의 첫 번째 능력은 설득력이 아닌 분별력이다.
이 사람은 지금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구매할 사람인가,
망설이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인가.
이 감각은 훈련 가능하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날수록, 더 빨리 진짜를 알아본다.
나는 고객을 유형별로 나누고
니즈를 찾는 질문들을 스크립트로 정리했다.
마치 초상화를 그리듯,
그들의 감정을 그려봤다.
고객은 늘 다른 얼굴로 온다.
그러나 연습은 감각을 만든다.
사람은 제품을 고르지 않는다.
그 순간의 공기 속에서 감정을 고른다.
같은 이도 아침과 밤에 전혀 다른 이유로 같은 상품을 선택한다.
아침엔 즉석 소비가 가능한 것들이 잘 팔리고, 밤에는 집에 가져가 먹을 ‘바구니 손님’들이 많아진다.
학교 앞의 무인매장,
아파트 단지의 무인매장.
시간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제품도 다르다.
그래서 나는 매장에 흐르는 음악을 바꾸고
진열대를 조정한다.
감정은 언제나 분위기를 타고 흘러간다.
그리고 어느 날,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했다.
조명, 음악, 진열, 냄새, 가격표.
모든 것이 조용히 손을 맞잡던 날.
고객들은 만 원어치 아이스크림을 사러 왔다가
두 배를 사갔다.
아무 말도 없었고,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보의 승리가 아니라,
감정이 작동한 공간의 마법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도, 끝내 사지 않은 고객이 있었다.
나는 수치와 사실은 잘 전달했지만
“괜찮을 것 같다”는 감정을 끝내 건네지 못했다.
걱정이 많은 성향임을 눈치채고도, 원칙적인 말만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조용한 감정의 지지였다.
결정을 유보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도 있다.
그들의 발걸음을 되돌린 건
대부분, 누군가의 말 한마디였다.
그래서 나는 고객의 배우자와 함께 상담을 하고, 단체 카톡방을 만든다.
말이 전해지며 변하는 걸 막기 위해서.
그리고 결국, 누군가의 지지가 결정자를 돌아오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설득은 가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나 이루어진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감정을 먼저 읽는 일.
그것이 영업이다.
우리는 감정의 통역자다.
“지금 이 사람은, 왜 여기에 멈췄는가?”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상품을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상황과 감정을 조율하는 전문가다.
사람은 데이터를 보고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딘가에 멈춘 마음을 먼저 따른다.
그 멈춤의 이유를 먼저 물을 수 있는 사람.
그는 말을 꺼내기 전에
공기를 먼저 읽고, 설명보다 맥락을 감지한다.
선택은 이성의 계산이 아니라,
감정이 미세하게 기운 찰나에 이루어지기에.
팔기 전에, 읽는다.
거기서부터 마케팅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