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으로 선을 긋는 사람들

by 노경문

인도의 힌두교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연한 종교다.


그 안에는 하늘의 신도 있고, 땅의 신도 있으며, 마을의 신, 조상의 신, 바람의 신, 돌의 신까지 존재한다.

어떤 이는 할아버지의 넋이 살아 있는 집안의 조상신에게 밥을 차려주고,

어떤 이는 마을 입구에 선 마리암만 여신에게 닭을 바친다.

또 어떤 이는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며 강가 여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힌두교는 ‘무엇을 믿느냐’보다, ‘누구와 연결되어 있느냐’를 더 중시하는 종교다. 그래서 신의 이름이 수천 가지고, 구원의 방식도 수만 가지다.

신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집 안의 촛불 위, 나무 밑의 돌탑 속, 바람결에 흐르는 존재로 살아 있다.

그렇기에 힌두교는 ‘절대의 이름을 단일화하지 않는 종교’,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신을 불러도 괜찮다고 말하는 종교다.

그러나 오늘날 인도에서 강하게 자리 잡은 힌두 민족주의(Hindutva)는 이 포용의 종교를 하나의 정치 이념으로 단순화해 버렸다.

힌두 민족주의는 힌두교의 정신을 따르기보다는,
힌두교를 '국가 정체성'의 기초로 삼고, 그것을 '지켜야 할 문화유산'으로 고정한다.
힌두교는 더 이상 신앙이 아니라,
국경을 긋는 표식이 되었다.

이슬람과 기독교 같은 외래 종교는 그들에게 단순한 타종교가 아니다.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한 외부 문명의 흔적이며, 과거 침략자의 잔재로 간주된다.
따라서 ‘다름’은 ‘위협’으로 해석되고, 공존은 경계로 바뀐다.

힌두 민족주의의 출발점은 이렇게 요약된다.
“진짜 인도인은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에서 만들어진 신을 믿는 사람이다.”
이 기준에서 이슬람과 기독교는 외래종이 되고, 중동에서 온 신을 믿는 자는 이 공동체의 ‘내부’에 속하지 않는다고 간주된다.

이 논리는 역사적 상처 위에 세워진 기억의 재해석이다.
무굴 제국의 침입과 종교적 탄압,

영국 식민지 시대의 기독교 선교와 개종,

1947년의 분단과 학살의 트라우마.
이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

그래서 힌두 민족주의는 힌두교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도구화한 결과물이다.

이는 자유를 말하며 통제를 강화하는 자유주의,
평등을 말하며 규율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처럼,
역설적인 이념의 전개 방식과 닮아 있다.

힌두 민족주의는 다양성의 종교 힌두교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정체성과 문화의 단일성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외래 요소’의 배척을 통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정치 논리를 만든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닌,
힘, 뿌리, 소속감, 그리고 다수를 하나로 묶기 위한 정치의 언어다.
그 언어는 투표함, 국경, 교과서, 사원 속에 살아 있다.

힌두 민족주의는 자신의 모순을 감춘 채 말한다.
겉으로는 힌두교의 전통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힌두교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정체성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배제하려 든다.

포용의 언어로 배제를 말하는 이중 구조.
그것이 힌두 민족주의의 본질적인 긴장이다.

그렇다고 인도 사회 전체가 힌두 민족주의에 완전히 매몰된 것은 아니다.
인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이며, 다양성과 근대성, 전통과 실용주의 사이에서 양면적인 얼굴을 가진 나라다.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인도 국민이 트럼프를 좋아하는 이유”로 나타난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 이민 제한, 강한 군사력, 이슬람에 대한 경계 등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반가워할 모든 코드들을 드러냈다.
그는 인도 총리 모디와의 개인적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했고, “이슬람권과는 거리 두되, 인도와는 전략적 동맹”이라는 외교 노선을 뚜렷이 했다.

서구 열강에 대한 경계와 동경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트럼프는 비주류 정치인으로서 인도에게는 ‘대등한 파트너’처럼 비쳤고,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이해는 인도 대중에게 대리만족을 안겼다.

결국 트럼프에 대한 인도의 호감은,
하나는 감정적 공명, 다른 하나는 전략적 이해가 맞닿은 결과였다.

힌두교는 신의 이름을 수천 개로 불러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힌두 민족주의는 신의 이름을 하나로 정해야 강하다고 믿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인도는 오늘도 역사와 정체성, 다수와 소수, 전통과 욕망 사이를 건너고 있다.

그 여정은, 우리에게도 묻는다.


우리는 정말 신앙과 정치를 분리하고 있는가?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까지 믿음이고, 어디서부터 경계인가?
우리는 신을 부르는 언어로, 누군가를 지우고 있진 않은가?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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