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의미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탄생
인도에는 카스트제도라는 계급제도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불가촉천민이라는 가장 낮은 계급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장 하천한 일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이 계급 사람들과 가까이 하기도 싫어합니다. 오염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인도의 계급사회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습니다. 시험이 더 중요한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죠.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처럼 인도에서도 성적으로 인해서 좋은 직업을 구하는 게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제는 성적이 새로운 계급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시험을 볼 때, 온갖 부정행위를 저지릅니다. 비하르 주 전체의 60%가 부정행위를 한다는 통계도 나오니까요.
그럼 부정행위를 하는 동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냐고요? 시험장은 경찰이 지키고 있고, 창문에는 쇠창살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뇌물을 요구하고, 쇠창살이 붙어도 새로운 기술로 커닝을 시도합니다. 이를 위해서 온 가족, 친척, 친구가 목숨을 걸고 커닝을 도와줍니다.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은 인도처럼 커닝을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1년에 1000만 명이 보는 대입시험인 가오카오를 통해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험을 잘 보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좋은 대학에 가야 인생이 바뀐다고 믿습니다.
한국이라고 다를 것은 없겠지요. 고3 학생들은 수능시험에 목을 맵니다. 최근에 학생들은 수능 성적을 받아보았습니다. 1문제 틀려도 3등급이 나오는 과목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허무할까요? 1문제 틀린 게 등급으로 3등급을 받을만한 평가적 가치가 존재하는 걸까요?
그럼 프랑스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프랑스의 대입시험은 '바칼로레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첫 과목은 항상 철학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의 철학 시험 문제는 이러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인가?'
'나는 내 과거로부터 만들어지는가?'
이 글은 시험이 잘못되었구나를 이야기하려고 쓰는 글은 아닙니다. 인도, 중국, 한국, 프랑스의 사례를 가지고 이 안에서 어떠한 사실과 의미가 맥락을 형성하고 사회적인 또는 개인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과학적 사실 또는 객관적 사실이 존재합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제가 어젯밤에 목살을 구워서 먹었습니다. 그럼 어젯밤에 목살을 먹었다는 건 객관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목살이 너무 비려서 별로였어'라고 말한다면 이건 제 개인적인 의미겠죠. 그럼 여기서 어떠한 맥락이 생겼을까요?
'어젯밤에 배가 고파서 목살을 먹었는데 너무 비려서 별로였어. 짜증 나.'
이 사실과 의미 속에서 짜증이라는 맥락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럼 이게 어떻게 개인적인 가치로 발전할까요? 만약 그 목살을 집 앞 정육점에서 산거라고 한다면 '아 정육점 고기는 비려서 가지 말아야겠어'라는 개인적인 가치관으로 형성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한 번에 이렇게 까지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어떠한 사실과 의미로 이루어진 맥락이 반복된다면 그게 가치로 발전하게 되고, 사회적인 공감을 얻어 많은 사람이 받아들인다면 사회적인 가치, 결국 이데올로기가 형성됩니다.
독일 히틀러 시절의 시험문제에는 이런 문제들이 출제되었습니다.
'장애인 보호시설을 유지하는 비용이 얼마나 될까요?'
'그 비용이면 몇 명의 사람들이 빵을 먹을 수 있을까요?'
결국 복지와 나눔은 대중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식으로 사실과 의미 맥락을 부여하여,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왜 우리가 사실과 의미가 만들어내는 맥락과 가치를 알아야 하는지 이해가 조금 되시나요?
인도의 사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인도 카스트제도 중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리는 계급이 존재한다. (사실)
인도 사람들은 불가촉천민과 가까이 가는 것조차 싫어한다. (의미)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된 계급이 사람의 신분을 나눈다. (맥락)
신분은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이데올로기)
인도의 사회를 이렇게도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제도가 인생역전을 만들어주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불가촉천민 중 시험성적이 좋아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등장했다. (사실)
그 사람을 보면서 시험성적이 좋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미)
'나도 시험성적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과 믿음이 생긴다. (맥락)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커닝을 하고, 결과에 매달린다. (사회적 가치)
인도는 선생님이 부정행위를 돕고, 경찰이 뇌물을 받고 부정행위를 묵인합니다. 이런 사회적 가치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실과 의미 속에서 맥락이 생성되었을까요?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속에 학생이 써놓은 글귀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끌어주는 사람도 없고, 배경도 없고, 연줄도 없다. (사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면 잘 살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미)
좋은 대학이 내 미래를 결정짓는구나 라는 믿음이 생긴다. (맥락)
1000만 명의 모든 학생이 가오카오 단 하루에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고 준비하며, 새로운 산업들도 등장한다.(사회적 가치)
이로 프랑스는 사실과 의미가 맥락을 만들어서 현재의 사회적 가치가 생겨났는지 예상이 되시나요? 그들은 철학적인 시험문제가 당장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철학적인 삶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사실과 의미를 파악하여 맥락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쉽게는 세상이 정해놓은 인생을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바라보게 되는 거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만들어져 있는 사회적 가치,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가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면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결국 마케팅과 광고의 원리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광고에 의해서 제품을 사고 영향을 받게 되죠. 광고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맥락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합니다. 맥주 광고를 예를 들어볼까요? '피츠'라는 맥주의 광고는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3초' 뒤에 시원한 느낌이 온다고 광고합니다. 맥주를 마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3초 뒤에 시원한 느낌이 온다고 하는 건 '의미'겠죠? 그리고 광고를 여러 번 접 한 사람은 아 피츠를 마시면 3초 뒤에 시원해지는구나 라는 맥락에 잡히게 되고, '그럼 시원한 맥주를 마시려면 피츠를 마셔야 하는구나'라는 개인적인 가치를 만들게 됩니다.
또한, 요즘은 전문가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누구나 ~전문가, ~컨설턴트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내가 만나는 대상에게 맥락을 계속해서 부여하는 겁니다.
새로운 영향력을 만들고 싶고, 기존의 내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고 싶다면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사실부터 가치까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