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얼마나 욕심을 내어 예약을 걸어두었는지, 며칠 전에 예약 도서 입고 알림이 왔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출간 직후에도 인기 도서여서, 세 번째 예약 대기 순서에도 겨우 올랐던 기억이 났다. 도서관까지 가는 몇 걸음이 귀찮았지만 이 시기가 지나가면 언제 다시 손에 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나섰다. 이번 주부터 재개관한 도서관에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사서들은 전보다 더욱 바빠 보였다. 그 사이에 잠시 머물렀다가 예약 도서를 찾아 도서관을 나왔다.
사실 책을 찾아왔을 때는 걱정스러웠다. 예상보다 책이 두꺼웠기 때문이다. 집중력의 차이로 예전보다 얇은 책을 골라 읽던 내가 이 두께를 읽을 수 있을까 고민되었다. 전처럼 한번에 긴 시간을 낼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 이유라면 오히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기에는 지금처럼 적기가 없을 듯 보였다. 하루하루 계획을 새로 세워야 하는 요즘, 내일의 나는 어떻게 될지 몰랐고 어제의 나는 하루를 꼬박 책에게 내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더 여유를 낼 수 있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은 다음 날인 오늘 나는 이렇게 이 책에 대한 글을 남기고 있다. 마음은 더없이 복잡한데, 오히려 시간은 여유롭다.
내겐 표지로 기억되던 책이어서, 목차에서 '1917년 어진말'을 보았을 때 놀랐다. 지금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아주 옛날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풀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와이 이민과 사진 신부*라는 소재를 꺼내었다. 조국을 잃은 시기에, 조금이라도 편한 삶을 위해 이민을 택한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내용이라 금방 빠져들었다.
*미국에 있는 일본인 신랑과 일본에 있는 신부 사이에 사진과 서신으로 서로 혼인하는 방식이 있었는데, 당시 같은 처지에 있던 미주지역 한인들도 일본인들이 하는 방식을 모방하여 고국에서 사진을 통해 신부들을 데리고 왔다. 또한 하와이 정부에서도 소위 ‘사진결혼법’을 합법화하여 하와이에 오는 여성들의 입국을 허가하였기 때문에, 사진 교환을 통해 하와이로 이민 온 젊은 여성들이 ‘사진신부(picture bride)’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신부 [寫眞新婦]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윤 씨는 지난밤 생각해 보겠다며 답변을 미루었지만 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결정만 나면 신랑 측에서 결혼하는 데 드는 모든 경비를 보내 준다고 했으니 돈 걱정도 없다. 포와에 가고 싶었다. 공부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과부의 자식으로 삯바느질하며 살다 비슷한 처지의 남자에게 시집가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의 삶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한순간도 없었다.
전체 내용을 다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 버들이 포와(하와이)로 시집가기를 결정한 이유였다. 마음껏 밥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것, 여유로운 집에서 태어나 공부를 더 한 친구 홍주를 부러워만 했는데 그곳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소설에 나오던 연인들처럼 정인이 생긴다는 것.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제일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여자로 태어나면 많은 것들을 제한받았던 시대, 공부는 지금보다 큰 의미를 지녔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떠나 본 적 없는 고향을 떠나야만 할 이유가 '공부'이지 않은가. 현실에서 꿈꿀 수 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무서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진말에서 포와로 떠나는 이는 셋이다. 공부가 하고 싶은 버들, 갇혀 사는 삶보다 재가가 낫다고 생각한 홍주, 무당의 딸로 살지 않길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을 받은 송화. 셋의 공통점이라면 한 마을에서 살았다는 점과 현재 상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가정환경도 성향도 다른 셋은 각기 다른 꿈을 꾸며 포와로 향했다.
이렇게나 꿈 많은 모습을 보았기에, 포와에 도착하여 사진과 다른 남편들을 맞이하며 우는 모습이 더 애잔하게 느껴졌다. 버들의 남편 태완은 사진과 같았으나 무뚝뚝한 성격이라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읽었는지 모른다. 그다음에 올 폭풍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무서웠다. 그렇기에 버들과 태완의 관계가 호전되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이제 그들의 앞날이 행복하게만 그려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품어 보았다. 흔들리는 태완을 붙잡아주는 버들이 멋있어서 응원해주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지는 가 볼랍니더."
태완이 고개를 번쩍 들어 버들을 보았다.
"딴 기사나한테 마음 다 준 사나라 캐도 지는 당신하고 계속 가 볼랍니더. 가다 보면 당신 맘도 돌아오는 날이 있겄지예. 당신도 노력하겄다고 어무이 앞에서 약속하이소."
태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고마, 퍼뜩 일나소. 지 손도 놓칠 깁니꺼?"
버들이 태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말을 듣고 반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나. 누군가를 원한다는 게 이리도 예쁘게 표현될 수 있구나, 부모님에게도 순정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들이 들어서 기억에 남는다. 내가 소원한 바와 달리, 파도 하나가 너울지고 나면 다음 파도가 오듯 포와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 그녀들에게는 계속 삶의 파도가 넘실댄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의 엄마도 이 많은 파도를 타고 지금에 이르렀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코가 시큰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느 파도까지 넘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아득해지기도 했다.
버들, 홍주, 송화의 삶을 보며 나는 그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역경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그녀들이 영웅같이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작은 파도 하나에도 뼈가 에인 듯 앓아눕는데, 그녀들은 하나하나 넘어온 듯 보여서였다. 언젠가 그녀들처럼 초연해질 수 있을까 싶은 의문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 많은 파도를 넘은 그녀들이 소녀에게 엄마로 변한 모습을 쭉 지켜보아서 책을 덮었을 때는 아련해졌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도, 예전에는 열정 많은 사람이었고 꿈 많은 사람이었지만 자꾸 자신을 덮치는 파도에 마모되어 현재 모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4>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열정 넘치던 대학생 시절을 회상하는 내레이션이 나왔다.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도 한때가 있었다는 건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기나긴 서사로 풀어낸 책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버티며 살아내는 나에게 감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