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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독서에 이유는 없다

김영하의 <김영하 산문-읽다>를 읽고

by writerKS


요새 책과 출판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일들이 여럿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어떤 상황 속에서 일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여전히 뚜렷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그저 뾰족해져야 할 때 무뎌지지 않길, 기본은 지키면서 살아가길 더 절실히 바라게 되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읽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른 책이 김영하의 <읽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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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날로 나누어진 주제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다"였다.

소설가니까,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나의 답도 힐러리 경만큼 단순하다.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 것이다. 40년 넘게 소설을 읽어오면서 내 자아의 많은 부분이 해체되고 재구성되었겠고, 타인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겠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게 되었겠지만 애초에 그런 목적을 위해 소설을 집어든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했다고 말했을 때, 타인에게서 돌아오는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 행동이지만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주체자인 내가 이유를 모를 때도 있다. 이런 나의 행동들에 의미를 붙여야만 할 때가 있다. 특히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해야 할 때, 상대방은 내 선택에 대한 이유를 궁금해한다. 내게도 명확한 이유가 있는 행동들이 물론 있지만, 가끔은 "그냥" 또는 "어쩌다 보니" 행한 것들도 있어서 말을 떼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이 부분이 기억에 깊게 남은 것 같다. 나의 행동들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소개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두 번째 이유로는, 나도 '거기 있는 책'을 고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간도서들 중에서 흥미 있는 걸 미리 알라딘의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도서비로 할애할 여유분이 생기면 결제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 권 한 권을 넣을 때는 꼭 그 책이 갖고 싶었는데, 결제할 때는 그 책이 빠지기도 하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책이 추가되기도 한다. 책을 살 때 가장 끌리는 책들을 사게 되는 것인데, 정말 그때 그곳에 있기에 선택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넣어둔 책을 결제 전에 구해 읽게 될 때도 있고, 매번 결제 때마다 체크박스를 풀게 되는 책도 있다. 나의 변덕이지만, 이를 포장하여 말하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책이 바뀐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드를 열심히 적어 갔지만 그 책이 그날따라 제자리에 없다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머물고 있다면 나는 그저 손에 닿는 책을 선택한다. 이 역시 그곳에 있어서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김영하 작가의 산문을 여러 개 읽다 보니, 유사한 부분을 찾는 소소한 재미도 찾을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나는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과 우리나라는 외교관계도 없던 시절이었던데다 톈안먼 사태 직후여서 여행 분위기는 삼엄했다.

둘째 날 이야기 중에 이렇게 시작되는 문장이 있는데, 이 부분은 <여행의 이유>의 일부를 떠올리게 했다. 분위기가 다른 책에 실려서 그런지,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서 놀랐다. <여행의 이유>에서는 이 부분이 유쾌하게 나왔는데, 이 책에서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 부분이 등장했다. 한 소재를 분위기에 따라 달리 배치할 줄 아는 작가의 능력에 반하고, 재미있게 읽은 책을 발견하는 재미에 반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에 말하자면, 여기에 예로 등장하는 작품을 모르면 쉽게 읽기는 어려운 책이었던 듯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는데, 고전을 안 읽은 게 죄라면 죄이지만 예시를 읽으면서 봐도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또, 중간에 강조 문구를 두 페이지에 배치한 부분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내용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였다. 후반부부터는 그 부분을 넘기고 본문을 이어 읽었다. 민음사 잡지 <인플루언서>에도 이런 부분이 있어서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일까 잠시 생각도 해보았다.


종합하면, <읽다>는 좋은 느낌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 책이었다. 이유는 책을 읽는 데에 복잡한 이유를 두지 말라고 이야기해서다. 무얼 하는 데에 복잡한 이유는 필요치 않다는 걸 알려준 책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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