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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Jul 28. 2020

[독서 기록] 독서에 이유는 없다

김영하의 <김영하 산문-읽다>를 읽고


요새 책과 출판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일들이 여럿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어떤 상황 속에서 일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여전히 뚜렷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그저 뾰족해져야 할 때 무뎌지지 않길, 기본은 지키면서 살아가길 더 절실히 바라게 되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읽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른 책이 김영하의 <읽다>였다.



여섯 날로 나누어진 주제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다"였다. 

소설가니까,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나의 답도 힐러리 경만큼 단순하다.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 것이다. 40년 넘게 소설을 읽어오면서 내 자아의 많은 부분이 해체되고 재구성되었겠고, 타인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겠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게 되었겠지만 애초에 그런 목적을 위해 소설을 집어든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했다고 말했을 때, 타인에게서 돌아오는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 행동이지만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주체자인 내가 이유를 모를 때도 있다. 이런 나의 행동들에 의미를 붙여야만 할 때가 있다. 특히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해야 할 때, 상대방은 내 선택에 대한 이유를 궁금해한다. 내게도 명확한 이유가 있는 행동들이 물론 있지만, 가끔은 "그냥" 또는 "어쩌다 보니" 행한 것들도 있어서 말을 떼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이 부분이 기억에 깊게 남은 것 같다. 나의 행동들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소개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두 번째 이유로는, 나도 '거기 있는 책'을 고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간도서들 중에서 흥미 있는 걸 미리 알라딘의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도서비로 할애할 여유분이 생기면 결제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 권 한 권을 넣을 때는 꼭 그 책이 갖고 싶었는데, 결제할 때는 그 책이 빠지기도 하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책이 추가되기도 한다. 책을 살 때 가장 끌리는 책들을 사게 되는 것인데, 정말 그때 그곳에 있기에 선택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넣어둔 책을 결제 전에 구해 읽게 될 때도 있고, 매번 결제 때마다 체크박스를 풀게 되는 책도 있다. 나의 변덕이지만, 이를 포장하여 말하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책이 바뀐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드를 열심히 적어 갔지만 그 책이 그날따라 제자리에 없다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머물고 있다면 나는 그저 손에 닿는 책을 선택한다. 이 역시 그곳에 있어서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김영하 작가의 산문을 여러 개 읽다 보니, 유사한 부분을 찾는 소소한 재미도 찾을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나는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과 우리나라는 외교관계도 없던 시절이었던데다 톈안먼 사태 직후여서 여행 분위기는 삼엄했다.

둘째 날 이야기 중에 이렇게 시작되는 문장이 있는데, 이 부분은 <여행의 이유>의 일부를 떠올리게 했다. 분위기가 다른 책에 실려서 그런지,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서 놀랐다. <여행의 이유>에서는 이 부분이 유쾌하게 나왔는데, 이 책에서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 부분이 등장했다. 한 소재를 분위기에 따라 달리 배치할 줄 아는 작가의 능력에 반하고, 재미있게 읽은 책을 발견하는 재미에 반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에 말하자면, 여기에 예로 등장하는 작품을 모르면 쉽게 읽기는 어려운 책이었던 듯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는데, 고전을 안 읽은 게 죄라면 죄이지만 예시를 읽으면서 봐도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또, 중간에 강조 문구를 두 페이지에 배치한 부분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내용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였다. 후반부부터는 그 부분을 넘기고 본문을 이어 읽었다. 민음사 잡지 <인플루언서>에도 이런 부분이 있어서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일까 잠시 생각도 해보았다. 


종합하면, <읽다>는 좋은 느낌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 책이었다. 이유는 책을 읽는 데에 복잡한 이유를 두지 말라고 이야기해서다. 무얼 하는 데에 복잡한 이유는 필요치 않다는 걸 알려준 책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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