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니카의 <저 아직 안 망했는데요>를 읽고
<저 아직 안 망했는데요>를 고른 이유는, 그날의 내가 '망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이 끝났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며칠은 가라앉은 기분으로 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망한 기분이었다. 이 책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이 가장 읽기 좋은 때였다.
미디어에는 잘된 케이스만 노출된다. 꿈을 좇다 날개가 꺾인 이들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그림자는 가려진 채 빛만 드러나니 아이돌을 선망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간다. 꿈의 망령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매일 이어지는 피 말리는 '노오력'이 아니라 이 '노오력'의 끝에 어떤 결말도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일 것이다. (꿈의 망령 中)
저자 서모니카는 아이돌로 데뷔했다가 실패한 이력이 있는데, 아이돌 세계를 경험하며 '꿈'과 '실패'에 대해 깊게 알게 된 듯했다. 그녀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 두려워는 건 노력이 아무 빛도 없이 사그라질까 하는 마음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노력하는 게 없어질까 무서운 거지, 노력하는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니다.
꿈을 좇는 노력이 사라질까 무서운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실패에 관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 "너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주변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임은 분명하지만, 실패하면 마이너스가 된다는 뜻 또한 포함되어 있다. 나도 모르게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고, 지인들도 자연스레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세계에서 실패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시험에서도, 취업 경쟁에서도 '이 정도면 되었다'는 말보다는 '지금보다 나아져야지'라는 말을 들으며 커왔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가 잘못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이 된 것 같다. 얼마 전에도 개인 작업을 하면서 '성공시켜야 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몇 날 며칠을 잠을 못 잤는데, 어느 날 문득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개인 작업은 도전이었는데 도전의 끝은 성공이 되어야 한다고 성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나도 이해가 안 되었다. <저 아직 안 망했는데요>를 읽고 이유를 찾았다. 저자에게 질문하는 사람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사람들 안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했더라도 도전했음이 아름답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당장은 그렇다. '당장은'이라는 말을 쓴 것은 이런 성향을 바꿔 보려고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저 아직 안 망했는데요>에 그녀의 친구가 한 명 등장하는데, 그녀와 내가 참 닮았었다.
내가 참여할 기회를 주더라도 이 친구는 또 '하고 싶다'고만 하지, '한다'고 답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다' 말고 '한다' 中)
활동을 해보고 싶다던 친구에게 독서모임을 추천했지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두렵다며 친구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 후 독서모임이 유명해지자 친구는 '정말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는 내용 다음에 오는 구절이다. 나 역시 저분과 같았다. 기회가 생겨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껴지면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 보니 오는 기회를 발로 차는 느낌이 있어서,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욕심 내는 연습을 하고 싶다. 도전을 연습하고 있다. 이렇게 도전이 쌓이다 보면, 실패도 악몽으로 남지 않는 순간이 생기지 않을까.
실패 경험이 많으면 실패에도 덤덤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유튜브 조회수 하나에도 마음이 쿵, 하고 가라앉는 '초보 실패러'인가보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中)
물론 다음 실패도 슬플 수는 있다. 책 이름이 '저 아직 안 망했는데요'지만 실패에 덤덤하지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실패에 덤덤해지진 않아도 실패를 두고 앞으로 갈 수 있는 힘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큰 기대 없이 고른 책이었는데, 울적한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어서 매우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