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고
몇 년 전에 반복해서 "정세랑 소설은 <목소리를 드릴게요> 말고는 다 갖다 버려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지웠다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아니, 제가 정말 다작하는 편인데 정말로 다요? 이제 와선 웃지만, 창작들에게 조금만 너그럽게 대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작가의 말 中)
<목소리를 드릴게요> 속 작품들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읽는데, '창작들에게 조금만 너그럽게 대해주시길 바란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읽다>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나왔다. 관객은 영화감독에 대해 정말 비판적인데, 독자도 소설가에게 비판적이냐고 묻는다. 그때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읽은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입을 다문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세랑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몇몇 독자도 소설가에게 정말로 비판적이라는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 때마다 '비판'을 포함시켜야 할지 고민한다. 읽다 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는 책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정성껏 쓴 텍스트고 누군가가 열심히 만든 표지일 텐데 싶은 생각이 들면 고민이 시작된다. 내가 "이 부분은 아쉽네요."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다면, 좋은 면만 쓰는 건 올바른 리뷰일까?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요동친다.
되도록 초반에는 작품의 강점을 쓰는 편이다. 책을 고른 이유가 이 책의 매력일 것이고, 끝까지 읽은 데에는 책이 흡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앞부분에 서술한다. 이 책을 검색하고 이곳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떤 점에서 좋은지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쉬웠던 점은 마지막에 쓰고, 개인적인 견해일 수 있다는 점도 주지하는 편이다. 내가 아쉬운 부분이 남들에게는 강점이 될 수도 있고, 아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남들은 이런 나를 소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마음 편히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리뷰를 쓰는 나의 방법이다.
몇 년 동안 비판했던 저분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해는 되었다. 소설집 작품들 중에서 나에게도 <목소리를 드릴게요>가 가장 재미있게 읽혔고, 표제작으로 하기에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과학과 친밀하지 못한 나에게도 부담감 없이 읽혔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자신도 모르는 새, 범죄, 질병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격리한다는 소재는 특이했다. 그런데 수용소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간적이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마치 문이과 통합 교과처럼, 이과적 논리와 문과적 감성이 합쳐진 작품으로 느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수용소에 갇혀서 자유를 뺏긴 것에 슬퍼하다가 그 생활에 점점 젖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곧 목소리를 잃는다는 생각에 노래방 기계를 샀던 주인공이 미러볼을 사는 모습은, 웃음 참기 챌린지를 하는데 옆에서 자꾸 개그를 치는 느낌을 들게 했다. 웃기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상황에 적응을 해가는 게 사람 아닌가. 그들도 특이한 능력이 있어 서로를 '괴물'이라 생각은 하지만, 사실 그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그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벌이는 사건이 이해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머릿속 생각대로만 살 수 있겠나.
정세랑 작가의 작품은 조금 더 구체화시켜서 쓰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먼 길을 둘러서 작품을 소개하게 되는 것 같다. 문이과 통합 감성 소설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몇 가지 작품은 문과인 내가 읽기에는 난해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러니 기존 한국문학과 다른 것을 읽고 싶다 싶은 마음이 들 때 도전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