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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ug 22. 2020

[독서 기록] 그래도 나는 행복한 언니였다

원도의 <아무튼, 언니>를 읽고 


한 달 전, 인스타그램 리뷰에 자주 등장했던 책이다.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기도 했고, 리뷰를 보고 궁금하기도 해서 도서관에 구매 신청을 해둔 지 보름 정도가 지나 <아무튼, 언니>가 내 손에 들어왔다. 도서관 예약 서비스 애용자에게 다시 욕망이 들어왔다. 한동안 예약을 쉰다고 어디선가 말했던 것 같은데, 거짓부렁이 되었다.


<아무튼, 언니>를 다 보고 든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난 행복한 언니였군.'

집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집 가까운 국립대에 가는 게 효녀가 되는 길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를 박탈당했다. 진학하는 학과도 간호학과나 치위생과처럼 취직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곳이어야만 했다. (살아남은 언니들에게 中)

<아무튼, 언니>에서 여자를 언니로 대표할 때가 있다. 앞의 말은 사실 '그래도 난 행복한 여자였다'라는 의미였다. 나는 위로 오빠 하나가 있다. 그럼에도 사립대를 나왔고, 취업률이 높지 않은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공무원 준비를 한다면 3년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는 부모님도 계신다.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버림받거나 차별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이 상황에서도 불만이 있었다. 나의 불만이 작아 보였다. 그래서 행복한 여자로 살고 있다 생각했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누렸다는 걸로, 행복한 언니라는 데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생각보다  먼 곳에 있는 감정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행복한 언니들이 더 많아졌으면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엄마의 언니'였다. 

이모는 다섯 남매 중 셋째였으나 동시에 장녀로서 집안을 일으켜 세운 사람이나 다름없다고, 엄마는 늘 말한다. 이모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구 제일모직 직포과에 취직해 시집가는 스물세 살까지 회사 기숙사에 기거하며 돈을 벌었다. (엄마의 언니 中)

나의 엄마는 이 문단의 이모 같은 사람이었다. 오남매의 장녀였으며, 아빠와 결혼하기 전까지 제과 회사에서 일했다. 여전히 큰누나, 큰딸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두 자녀의 엄마와 아내 역할까지 하는 사람이다. 등에 지워진 짐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엄마는 아프다, 힘들다 소리 낼 줄 모른다. 그래서 엄마가 아플 때 더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나는 행복한 언니였고, 엄마는 희생하는 언니였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너무 내 생각을 하느라 엄마를 더 힘든 언니로 만든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 중 누군가 소녀가 되면, 누군가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엄마는 어려서도, 자신의 아이들이 생겨서도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미안해졌다. 이 글을 읽으면서는 더욱 미안해졌다. 앞으로 더 잘해야지 생각할 뿐이다.


<아무튼, 언니>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살자'는 문장이 나온다. 여자로 살아서 힘들었던 순간들, 여자로 살며 언니들에게 위로받았던 순간들이 교차해서 나오고 마지막쯤 '그럼에도 우리는 살자'고 원도 작가는 말한다. 참 따뜻했다. 


공동화장실에 가는 게 불안한 순간, 짧은 머리를 하면 여자답지 못하다는 취급을 받는 순간, '조심히 가'라는 말을 들어야만 하는 순간. 여러 순간, '여자라서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뀌려고 움직이는 세상이니,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 아닐까. 그럼에도 따듯하게 내 어깨를 감싸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아무튼, 언니>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들기도 하지만 살아볼 만한 것도 세상이라고. 그러니 살아보자고. 


살다 보면, 더 행복해진 언니들도 만날 수 있고, 지금보다 어려질 엄마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살아 있자. 

<아무튼, 언니>는 내게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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