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대학교 은사님 생각이 났다. 단과대 학장님이셨던 은사님은 아침 청소를 위해 일찍 나온 근로학생인 나보다도 일찍 학교에 나와 학장실을 지키고 계셨다. 근로학생인 내게도 매일 아침 인사를 전해주실 만큼 친절하셨다. 또 학생들을 좋아하셨다. 다른 일 때문에 행정동에 갔다가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면, 커피나 차를 직접 내려주시곤 했다.
3학년이 끝날 무렵이었다. 교수님은 아침마다 운전을 배운다고 했다. 매번 무언가를 배우는 게 좋다며, 이번에 운전을 배우면 더 많은 곳을 다녀야겠다고 말씀하셨다. 학생인 우리보다 빠른 시간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셨다. 누구보다 빠르게 하루를 시작하셨던 분이고, 누구보다 성실하셨던 분이다.
몇 주가 흘렀을까, 교수님 대신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대신 들어오셨다. 교수님은 병원에 계시다고 했다. 몸속에 암이 자라고 있다고 했고, 수업을 대신 들어온 교수님은 눈물 때문에 제대로 말씀을 전하지도 못하셨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시 몇 주 후, 교수님은 수업을 재개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수님의 얼굴은 퉁퉁 부었고, 그제야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김진영의 애도일기를 읽으며, 우리 교수님도 투병 중에 일기를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을 전공하셨던 분이고, 누구보다 따듯한 분이셨으니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걱정을 일기로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리고 수업에 나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도 김진영 작가님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은사님은 학생들이 아파하면 더 마음 아파하실 분이었다. 투병 중에도 강의를 하셨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는 뜻에 따라서였다.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지셨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셔서 행복했을 것이다. 지상에서의 일을 끝낸 선생님은 학교를 한 바퀴 돌고 하늘로 떠나셨다.
김진영 작가님도 교수님도, 내가 느끼기에는, 죽음이라는 무서운 관문 앞에 섰지만 너무도 초연한 태도였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른 같다고 느꼈다.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가 맞았다.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
카프카의 말을 이해할 성인이셨던 것일까. 가야 할 때가 있음을 인정한 모습과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하려는 어른들의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지금의 현실이 힘들어서 모든 걸 놓고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삶의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생을 채워가는 글을 읽으며 반성했다. 그들이 살고 싶었을 시간 속에 있으면서, 나는 삶을 채울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가 싶어졌다.
요즘 '죽음'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만큼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것마저도 삶에 대한 의욕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