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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15. 2020

[독서 기록] 기행문이 이렇게 어려운 건가요?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을 읽고






나에겐 너무 어려운 그의 기행문(紀行文)


《유럽 도시 기행 1》을 읽으면서, 처음 갖게 된 느낌은 ‘역사덕후가 여행을 가면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였다. 기행(紀行)의 뜻이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표준국어대사전)’인데, 이런 것을 기행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면 내가 여행을 다녀와서 적은 것들은 너무 가벼워서 날아갈 글일 것이다. <알쓸신잡3>에서 그리스로 떠나는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던 유희열 님이

“나는 외국 아울렛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안 해.”

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책을 읽은 나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왜 이 책에는 내가 아는 도시들 이야기가 없는데!!”


사진이 포함되어 있고,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책이 아님에도 꽤 오랜 기간 책을 들고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가 컸다. 모두 가본 도시였는데, 아는 이야기가 없는 그의 기행문은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역사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남의 기행문을 읽고 혼자 자괴감에 빠졌다.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 책이 유시민 작가의 기행문 스타일이라면, 내가 꼭 공감하며 읽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합리화의 끝판왕 같은 말이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이왕 잡은 책이니 끝까지만 읽자는 생각으로 책을 잡았다. 




 


짧은 사족-기다릴 가치가 있는 작가


서문의 마지막 부분, 유시민 작가는 이 책을 기획한 지 5년이 지났으며 그때까지 자신을 기다리며 지원해준 출판사 ‘생각의길’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출판사가 5년을 기다려줄 만큼 신뢰감 있는 저자인 그가 부럽고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정치인으로, 방송인으로 이름을 알린 유시민 작가의 명성도 무시할 수야 없었겠지만, 많은 시간과 조사가 들어가는 이 시리즈 기획을 출판사가 도와주었다는 것은 작가인 유시민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었다는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신뢰를 주는 글쟁이인 그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이런 이야기를 정유정 작가의 북콘서트에서도 들었다. <진이, 지니>의 취재를 위해 외국 동물원으로의 취재도 함께했다는 출판사 직원들,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한 것은 당연히 정유정 작가에 대한 믿음이었다. 유시민 작가의 기획도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큰 신뢰를 나무삼아 자랐을 것이다. 그를 믿어준 출판사도, 출판사가 믿을 만한 작가인 그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테네 편


몇 번이나 책을 끊어 읽었다 보니, 아테네 편의 기억은 사실 벌써 흐릿하다. 그런데 제목을 봤을 때 그가 탁월한 작명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테네, 멋있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 아테네를 직·간접적으로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도시의 이미지가 바로 떠오를 제목이다.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나도 유시민 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다.


‘괜히 온 것 아닌가? 아무것도 없잖아.’


옛 명성으로 현재를 이어가는 도시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보다 과거의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도시들과 같은 분량의 이야기지만, 좀 더 어렵게만 느껴진 것은 아테네가 담고 있는 시대가 과거의 과거의 과거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내게 네 개의 도시 중 가장 읽기 어려웠던 파트는 이곳, 아테네였다. 





로마 편


로마 역시 뿌리 깊은 역사의 도시인데, 내게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가벼운 에피소드들이었다. 로마의 에스프레소, 로마의 정식 같은 것들. 비교적 가까운 시일에 읽은 것이기도 하고, 로마를 들른 여행객으로 나도 공감했던 부분도 있었다. ‘로마는 에스프레소!’라는 제목이 있는데, 이 문장에 매우 공감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원액을 마실 정도로 속이 좋지는 않은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로마에서 마신 에스프레소는 매우 고소했다. 그리고 저자가 흑설탕을 잔뜩 타두었다가 커피 향이 밴 설탕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친구가 그 장면을 직접 보여준 적이 있었다. 로마에서는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에스프레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로마의 식사 편이 기억에 남는 건 나는 저자와 달리 로마에서의 식사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피자를 먹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음 들어간 식당에서 시킨 피자는 아주 짠 소금 맛이었다. 그래서 저자가 발품을 팔아 찾았다는 식당에서의 식사가 상상되지 않았다. 아주 일반적인 여행객이었던 나는 검색을 먼저 했지 발품을 할지 않았다. 다음에는 한 번 내 눈을 믿고 식당을 선택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스탄불 편


다른 여행에 비해 이스탄불의 행선지는 다른 곳보다 많이 겹쳤고, 그의 역사 설명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스탄불에 대한 내 생각이 다른 도시보다 낭만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사실 이스탄불을 방문하기 전, 나는 여길 꼭 가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방문 후에는 이처럼 오묘하고 매력적인 도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저자가 이스탄불을 ‘다양성을 잃어버린 국제도시’라고 특성화하였을 때는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그렇기에 너무 매력적이었는데 싶은 마음이었다. 책을 보며 현재의 터키보다 이전의 이스탄불이 더 크고 다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모습을 이미 알고 있던 그는 현재의 이스탄불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호객을 당하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느껴졌다. 유난히 동안인 친구와 다녔던 나는 이스탄불을 떠나는 날 “헤이, 베이비 맘마?”라는 호객까지 들었다. 저자가 들었다던 “내가 초대했는데 안 오다니, 날 무시한 거야?”라는 말도 이와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생각나는데, 카파도키아(터키의 다른 도시)에서는 공사 중이어서 문을 닫은 카페에서 친구와 나를 일단 받고 메뉴 한 가지만 된다며 차를 팔았던 기억이 있다. 조명을 달고 있는 사람을 뒤로하고 친구는 창문에 ‘내년 4월에 다시 엽니다.’라는 문구를 보았다고 했다. 가오픈도 아니고 리뉴얼하는 가게 안에서 티백을 돈 주고 팔았다, 그곳은. 그래도 터키 커피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나도 공감한다. 저자는 오스만식 커피라고 하였다. 커피 찌꺼기가 다 걸리지지 않았지만 그곳 특유의 진득한 맛이 나는 커피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설탕을 탄 것 같은 느낌은 나도 받았지만, 나는 단 것을 좋아해서 오히려 더 좋았다. 도시에 대한 느낌이 좋아서인지 《유럽 도시 기행 1》에서 터키 편만은 정말 즐겁게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파리 편


파리 편에서는 건축물들이 익숙해서인지, 역사서와 같다는 느낌을 조금 덜 받았다. 노트르담 성당이 탔을 때 며칠 만에 1조 원이 모였다고 한다.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 국민과 파리 시민에게 ‘문화 아이콘’이며 우리에겐 조계사, 경복궁, 남대문, 독립문, 명동 성당이 합쳐진 느낌이라고 했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건축물이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 여러 번 들었지만 에펠탑에 대한 감상이 인상적이었다. 완공되었을 때는 많은 질타를 받았지만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 그 위에서 뛰어내린 이야기부터 엘리베이터 끈을 끊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에펠탑 위를 올랐다. 에펠탑을 보기 싫어서 그 안의 식당에서 밥을 먹은 사람이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까지 있었다. 지금은 그것 하나를 보려고 파리에 찾아드는 인파가 있는데, 아리송한 일이다. 지금 내가 진행하는 일들, 세상에서 진행되는 일들 중 아리송한 일들 중에도 나중에는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 하나는 있길 바란다. 





어렵지만 읽을 가치가 있는 기행문


사실 너무 어려웠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려면 위키백과를 끼고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유시민 작가가 상세하게 설명해준 세계사에 관련된 부분은 내게는 그 자료만으로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누군가는 여행지를 이렇게 본다는 걸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여행 갈 때마다 세계사, 한국사 공부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 공부하고 가면, 그가 역사를 좋아해서 이만큼 알고 본 것처럼 나도 더 넓은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유럽 도시 기행 1》을 읽고 나는 느꼈다. 여행의 사전 조사는 내가 좋아하는 걸 얼마나 더 넓고 깊게 볼 것인지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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