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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15. 2020

[독서 기록] 요가도 한국인처럼

박상아, <아무튼, 요가>를 읽고






20대에 체력이 많은 건, 30대, 40대에 쓸 체력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20대 중반이어서 '그게 무슨 소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짧은 입원과 20대 후반에 떠난 배낭여행에서 느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취업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운동이었다. 4개월간 트램펄린 위에서 근력운동을 했다. 그 위에서 런지도 하고 플랭크도 하고, 춤도 추었다. 재미도 있었고 그나마 붙은 체력과 허리통증의 저하로 의욕이 넘쳤으나, 격일로 찾아오는 야근으로 저녁식사를 포기하든 운동을 포기하든, 그것도 아니면 저녁식사와 잠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첫 운동 시도는 4개월로 종료되었다. 일주일 2~3일 9시 퇴근을 넘기던 그때 운동을 지속하는 건, 어쩌면 응급실을 갈 지옥의 기회일 수도 있었다. 


겨울이 지났다. 그사이 이사를 했고, 큰돈을 쓰고 집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어영부영 몇 달을 넘겼다. 더불어 고민이 많아진 시기가 찾아왔다. 자유로운 시간이 생겨도 생각을 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썼다. 움직이지 않으니 10여 년간 문제였던 요통이 도졌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면 손으로 허리를 짚고 일어나야 했다. 


여러 문제 때문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자 했다. 요가를 선택한 것은 회사에서 요가원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전과 새로운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이유도 아주 약간은 있었다.






첫 수업을 월요일 아침 7시 반으로 선택했다.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출근을 10시 이전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요가를 해본 지인에게 물어봤을 때, 힘든 건 이름과 상관없이 매한가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날은 빈야사 요가를 하는 날이었다. 그것이 플랭크를 기본 동작으로 하여 다른 동작을 더한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야 깨달았지만, 힘듦은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요가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50분 내내 뛰던 운동보다 내 팔 하나, 다리 하나 일자로 펴는 게 어렵다는 데에 놀랐다. 그래서 생각해버렸다. 


‘그만할까?’ 


결과적으로는 4개월치를 선결제해서 생각만으로 그쳤지만, 운동이 힘들어 그만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아무튼, 요가>와 조우하게 되었다. <아무튼, 요가>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가고 싶고 꼭 가야만 하는 독립 책방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서울의 서쪽에 살고, 책방은 수원에 있었다. 조금 시간을 늦춰도 갈 수 있으리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휴가를 내어놓고 그곳에 갈 날을 받아두었던 날, 그곳이 곧 폐업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처음 함박눈이 내리던 일요일 눈발을 뚫고 책방에 들렀고 그때 집어온 책이 이것이었다. 요가는 내게 미지의 세계였으니, 모르니 더 어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요가’라는 녀석을 이해하면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현재는 유명한 요가 강사인 저자도 처음 요가를 시작할 때 너무 힘들었다는 솔직한 감상이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앞사람에게 차이고 나도 뒷사람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현실, 숨 쉬는 법을 익히지 못해서 50분 요가 중간에 나가서 속을 게워내야만 했다는 이야기, 2분 샤워가 가능한 샤워실 이야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요생아(요가 신생아) 정도에 속하는 내게는 큰 도움이었다. 어떤 운동을 하든 그러하지만, 숨 쉬기 자체도 운동의 일부에 속하는 요가는 숨 쉬는 법이 정말 많이 중요하다. 그런데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에 집중하면 동작을 아예 할 수 없는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어서 숨 쉬는 법을 잊을 때가 종종 있다. 강사님께서 


“숨을 내쉬세요.” 


라고 할 때면 양옆 곳곳에서 나와 함께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늘 그런 편이다. 숨 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고 있다. 그 부분이 이 책에 나와서 신기하고 놀랐다. 


“재클린, 나는 수업을 하다가 15분쯤 지나면 속이 너무 안 좋아서 화장실에 뛰어가야 해. 왜 그런 걸까?”

“아, 내가 보니까 넌 숨을 안 쉬어. 숨을 쉬어, 상아!”

-“넌 숨을 안 쉬어. 숨을 쉬어, 상아!” 중에서 


사실 이 부분은 아직도 의문이지만, 요가원에는 수련 후 1시간 이후에 씻는 게 수련에 도움이 된다고 쓰여 있다. 여전히 그 부분은 풀리지 않았지만 이 책에도 씻는 것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어떻게 2분 안에 씻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그냥 물을 흩뿌리는 정도로 씻는다고. 그렇지 않으면 미리 씻고 오면 된다고 했다. 샤워를 한 이후 운동을 하면, 그 땀에서는 운동을 하고 바로 흘리는 땀과 달리 깨끗한 수분만 나와 괜찮다고 했다. 이게 답을 찾아주진 않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한 시간 뒤에 샤워하라는 데에는 의미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들게 해준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아무튼, 요가>를 읽고 제일 평안함을 느낀 것은, 미국에서 요가를 하는 이들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요가를 해도 된다는 마음을 얻은 것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의 정서의 익숙한 나는 어디서든 경쟁을 하려 들었다. 운동은 그중에서도 내가 최하점을 받는 과목이었다. 사회인이 되어서, 어른이 되어서 운동을 하면서도 그 경쟁심을 버릴 수 없었다. 


‘남들보다 많이 해야 해, 잘해야 해, 그것도 아니면 남들만큼은 해야 해.’ 


그러다 보니 모든 운동이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잘하지 못하니까. 남들이 투자해온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고 싶어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저자의 눈에서 본 미국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 신경 쓰지 않고 운동하는 것 같았다. 살이 쪘든, 남자이든 요가를 하는 데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다는 듯 운동했다.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난 왜 요가를 하고 싶었을까?’ 


잘하려고가 아니었다. 사무실에서만 내내 앉아 있어야 하는 몸은 굳었고, 그에 따른 요통을 해결하고자 요가를 시작한 것이었다. 신청할 때의 마음을 아예 잃어버렸고, 경쟁에 눈이 멀어 있었다. 그런 부분을 버리자 마음먹고 운동을 갔다. 남들에겐 가능하고 나에겐 불가능한 자세를 하다가 힘에 부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그 자세를 버티고 있는 데에 모든 힘을 다 썼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부터는 편해졌다. 이기려고 하는 운동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요가가 쉬워졌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팔을 앞으로 뻗어도 다리와 맞닿을 수 없고, 남들은 안 돼도 무릎까지 가는 손이 안 간다. ‘천천히 일어나세요.’라고 하면 내가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남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마음은 쉬워졌다, <아무튼, 요가>를 읽고 나는 그런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요가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내가 하는 것도 요가라니까.’

‘이효리처럼,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지는 사람만 요가하는 게 아니라고!’

‘아무튼, 나도 요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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