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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16. 2020

[독서 기록] 일이란 무엇일까?

윤동희, <좋아서, 혼자서>를 읽고




가장 싫은 말의 도치


'좋아서, 혼자서'라 다행이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혼자서, 좋아서'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힘들 때면, 이렇게 해서라도 버텨야 하나 싶다. 그런데 누군가


"저 혼자 좋아서 시작한 일이면서."


라는 말을 하면 정말 머리에 책을 날려주고 싶다. 김영하 작가가 그러지 않았나. 싸울 때 돌 성분이 들어 있는 우리나라 책처럼 아픈 게 없다고. 그 아픈 것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줘 패고 싶었다.

그래서 사실 제목을 보고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잠시 놀란 후 보이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해 일하는 나에게 하이파이브'


가 아니라면 제목만 보고 이 책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도 '일'일 뿐



일과 직장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 우연히 이 책을 집게 되었다. 책을 산 것은 에세이를 만들려는 레퍼런스 때문이었다. 그런데 읽은 것은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겠기 때문이었다.


늘 불만인 듯 말하지만 나는 행운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옆에서 접하며 일하고 있고, 가끔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덕질과 현업이 일치하는 것만큼 좋은 행운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라 좋았다. 그러나 몇 번이고 서술했듯이 그렇다 하여도 힘든 때는 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너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너무 작은 것에 깨져버린 그런 경우.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생활을 유지할 비용을 벌기 위해 일할 수 있을까.'

'일하는 데에 욕심을 내지 않고 그저 보통의 열의만을 내면서 살 수 있을까.'

고민과 함께 두 가지 물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런데 이 책의 초입에서 대답과 같은 문장을 찾았다.


'일'을 하는 이상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고품질의 삶을 누릴 수 없다.


그렇다. 좋아하는 '일'도 '일'이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만, 일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큰 걸 바랐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일하려면 이 책의 저자처럼 혼자 일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회사의 분위기에 수긍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걸 모르고 지천에 날뛰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절로 화도 분노도 고민도 가라앉았다. 저 문구를 보고 한 직장인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1판 1쇄의 중요성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자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책'을 무시하는 건 참 싫다. 그리고 책이 존중받는 건 참 행복하다. 한 자리에 서서 두 가지 일을 다 지켜보게 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점에 가면 먼지가 자욱이 나올 만큼 책이 많다. 그중에 제 주인을 찾아가는 경우는 적다. 그런 상황에서 책을 만들다 보니, 늘 그랬다 보니 한 권의 책이 참 소중하다. 그리고 제작자로서 내가 만든 책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대접을 받는 게 좋다.

14,400원


16,000원 정가의 책이 최대 가격 할인을 하여 그 책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누군가 내 손에 잔돈이 잘그락거리는 그 돈을 내어주었다. 몇십 권 배본을 하고 더 많은 판매대금이 통장에 찍히는 걸  봤다. 그래도 그 금액보다 소중한 금액과 권수는 없었고 없을 것이다.


내가 그 상황에 놓여서 그 돈을 다시 쥘 일이 없을 것이니까. 판매를 하여도 현금을 손에 쥘 기회는 더 적다. 주머니에서 잘그락거리는 동전과 몇 번이고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지폐를 손으로 잡아가며 생각했다. 그간의 힘듦은 이 돈을 내 손으로 한 번 쥐어보기 위함이었다. 누군가의 손에서 읽히고 쓰일 내 책들을 느껴보라고 누군가 내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을 업으로 삼아온 저자 윤동희의 글에는 이런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아껴주는 사람의 글이어서.

1판 1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의 글을 읽게 되어서 좋았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해 일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 일할 마음도, 자신도 없는 나는 누군가의 아래에서 누군가와 함께 일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처럼 혼자의 보폭으로 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늘 부딪힐 거고 잠시 서 있는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젠 괜찮을 것 같다.

좋아하는 일도 하나의 일일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래도 같이 걸어 나가는 보폭 보폭이 의미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이란 기대감을 갖게도 했지만, 지금은 Bittersweet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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