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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16. 2020

[독서 기록] 누군가의 일기에서 나를 찾는다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고






회색인이 되어서

페미니즘이 대두된 이후, 성별인 여자인 내가 무언가를  말한다는 데에 더욱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남들이 듣기 예민한 말을 하면 

"혹시 당신도 페미니스트인가요?"

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지만(ㅎㅎ) 개인적으로 나는 회색에 가까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에 속하지 않는, 의견으로 색을 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강한 색으로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그런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보면서, 그렇게 보이는 게 무서워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작가로 굉장히 유명한 두 사람이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의 글을 이 책에서 처음 보았고 두 사람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교환일기를 쓰고 있는 두 사람이라고 할 때, 공통점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딱 두 편, 두 사람이 쓴 글을 한 편씩만 읽어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 양극단에 서 있는 사람인지도 몰라.


자칭 회색인인 나는 흑과 백을 오고 가는 듯 보였던 두 사람의 교환일기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삼십대로의 진입을 앞두는 여자로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도 많았다. 







솔직하지 않아서

일단 나의 이십 대를 지배해왔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튀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이젠 버릴 때가 되었다는 의견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수준에서 솔직해도 된다는 말에 적극 동의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행동을 누군가는 '이기적'이라 비난하고, 그로 인해 후회하고 자책감을 느낄지도 몰라. 하지만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분명한 해나 민폐를 끼친 게 아니라면, 세상의 기준이나 타인들이 만들어내는 잡다한 소음에 휘둘릴 필요가 없더라. 또한 완연한 어른이 되어 솔직하기로 작정한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 임경선, 솔직과 가식 중


잡다한 소음에 내 이름이 언급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얼마나 나에게 진실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감정을 감추고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 모르게 혼자 지쳤다. 그 끝에 돌아섰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혼자 토라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게 내가 솔직하지 않아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일할 때는 정확하게

읽으면서 가장 뜨끔했던 부분이었다. 임경선이 일을 고르는 내용을 읽으면서 배워야지 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페이와 조건을 정확히 제시하는 곳과 일한다는 것이었다. 구직자의 입장에 있으면, 이것을 제시하는 회사가 좋은 곳임을 알면서도 묻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을 물음으로써 그들이 내 자리라고 말했던 자리가 없어진 것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에 담자 생각했다.


이런 부분은 내가 회사에서 외부인들과 하는 작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팀장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업무 관련 이야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고, 나는 그의 업무비에 대해 상당히 오랜 작업이 진행된 후 듣게 되었다. 내부에서 감당한 업무들이 많아서 부정기적으로 오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을 적게 맡겼는데, 나중에 팀장이 그가 이 돈을 받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일이 다 끝난 마당에 저건 왜 물어?


결국 아르바이트생은 약속된 임금을 다 받지 못했고, 그는 담당자였던 나에게 울며 전화했다. 아직 대학생이었는데, 참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실무를 담당할 때 어느 정도의 임금이 지급되는지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레짐작했던 것보다 큰돈을 받는지 알았으면 보이는 일거리를 많이 주었을 것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누구 한 명을 울린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업무 메일에 대해 서술한 부분도 웃으면서 보았다.


자, 그리고 이번에는 느낌이 썩 좋지 못한 업무메일의 특징.

1. 문장 끝마다, 혹은 문장 중간에 '스마일' 이모티콘이 너무 많다.

2. 문장 끝마다, 혹은 문장 중간중간에 '물결무늬'가 과다하게 사용된다.

3. 문장 끝마다, 혹은 문장 중간중간에 '말줄임표'가 과다하게 사용된다.


- 임경선, 이사 준비와 야무진 업무메일 중


'^^~' 이게 얼마나 성의 없어 보이는지 나도 안다. 몰라서 쓰는 건 아니다. 급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걸 볼 때 성의 없게 느낀다는 걸 글로 보니 웃음이 나왔다. 공감도 되고, 매일매일 저걸 풀어쓸 수는 없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받는 사람에게 하수의 느낌을 낸다니 조심해야겠다.







여러 회사를 다니고 나서, 이곳에 들어왔을 때 너무 어이없는 실수는 하지 않는 직장인이 되자 결심했었다. 그러나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이 꽤 자주 생겼던 것 같다. 실수였던 적도 많고,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하루 종일 나만의 동굴에 틀어박히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노련함은 많은 시간을 견뎌온 경험에서밖에 나올 수 없음을 알고 조금은 편해졌다. 만약 조금 더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직장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자로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임경선의 글 중 지방 출장을 가면 

"남편에게 허락받았어? 너희 남편 좋은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듣는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때 임경선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남편에게 허락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 아이를 함께 양육하는 입장이니 협의를 통해 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단단한 그녀의 생각이 부러웠다. 여자인 나도 저런 말을 몇 번이고 했을 텐데, 당연한 게 아니라고 지적할 수 있는 능력이 부러웠다. 나는 그런 통념을 깰 만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통념을 깨는 생각을 하는 것도 내겐 노력으로 필요한 것 같다.


사실 같은 문제로 나는 고민한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를 회사 대표가 껄끄러워하는 나이가 되었다. 직장을 옮기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더하다. 거기서 나는 늘 되받아치지 못하고 취직되기에 유리한 말들만 했었다. 그런 대답이 나를 갉아먹었던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확 들었던 순간이었다.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색이 분명한 사람들의 단단함을 보았다는 점이었다. 내겐 없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간 내가 내 자신에게 해온 것들이 미안해졌다. 다음 해에는 조금 더 내게 친절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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