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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18. 2020

[독서 기록] 가해자에 대한 고찰

프리드릭 베크만의 <베어타운>에 대하여

(출처 알라딘 소장 이북 )



*2018년에 기록했던 자료이며, 그때 시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여행을 가지 않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21일간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곳에 가서 읽을 책들을 고르던 중 <베어타운>에 관심이 갔다. 지인이 프리드릭 베크만의 전작들을 꽤 재미있다고 평가했었고, 베어타운도 그 재미있다는 소설들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 예상은 전혀 맞지 않았다. <베어타운>은 아이스하키를 사랑하는 ‘베어타운’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가해자는 청소년 하키팀의 에이스 케빈이고, 피해자는 평범한 여학생 마야다. 그런데 이 사건이 마을에 알려지자, 어떤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피해자를 가해자라고 말한다. 굳이 이 사건을 결승날 당일에 터뜨려 마을의 전부인 아이스하키팀의 우승을 막은 가해자.


이 부분에서 뜨악했다.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 잔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의 영웅을 위해서 상처받은 소녀를 무너뜨리는 어른들의 모습이. 그렇지만 독자들이 섣부르게 나는 그러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마야의 아버지 페테르를 하키팀 소속 직원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어른인 페테르는 이 마을의 영웅적인 하키 선수였고, 스캔들이 터졌을 때 하키팀의 에이스가 어떻게 추락할지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더욱 많이 그리고 깊이 알고 있다. 그렇기에 딸의 일이지만 아주 잠시 고민한다. 피해자가 딸이 아니었다면 그는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다못해 발표날을 미뤘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고민을 살짝 독자에게 보여준다.





베어타운에서 자란 어른들의 생각이 어떤지 알려주고, 

그 어른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소녀를 가해자로 만들 건지 보여 준다.

 

베어타운에서 자란 사람들은 하키를 1순위로 둔다. 그렇기에 하키팀 우승을 막은 마야네 가족을 가해자로 만든다. 당사자인 마야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립되고, 페터르 역시 하키 영웅에서 가해자의 가족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가해자로 전락한 마야의 가족들은 베어타운에서 설 자리를 잃어 간다. 마야의 어머니인 미라 역시도 엄마이자 변호사로 노력하지만 이 싸움에서 자신의 가족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실의에 빠진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보고 이게 소설이기만 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돈과 명예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이야기,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소재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이 소재뿐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어쩌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 사건이 등장하기 전까지 베어타운 사람들을 나는 얼마나 순박하다고 생각했는가. 하키밖에 모르는 순박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오랜 시간 봐왔던 동료의 아이를 무참히 짓밟았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나 때문에 소중한 걸 잃게 된다면 그렇게 변할지도 모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정해진 가해자는 없다는 것이다. 원래 나쁜 사람이어서 가해자가 되는 게 아니고 상황에 따라 누구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가해자는 마야를 폭행한 케빈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사람은 케빈이지만 그 뒤로 쫓아온 상처들은 베어타운 모두가 만든 상처였다. 그 사실이 나를 망치로 툭 친 것 같았다. 소문에 휩쓸려 누군가를 등지므로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욱 행동에 조심하고, 더욱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내 것을 잃는다고 섣불리 가해자의 길을 걷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한동안, 그리고 여전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미투도 같은 시각에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리 중 윗사람이 폭행을 저지를 때,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말리지 못한 것을 탓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방조한다는 면에서 가해자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투 문제가 아니어도, 집단에서 윗사람의 말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가해자가 된 경우는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그런 경우가 또 생긴다면 앞서 말한 대로 깊게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베어타운>이 소설인 건, 마야와 그 가족들이 이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결말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독자로서는 마야가 고통을 극복하고 가해자인 케빈은 계속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게 좀 기뻤다. 천천히 악의 응징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현실에서도 똑같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못할 것 같다. 영화 <한공주>의 실제 주인공은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들었다. 그 현실을 아직 진행 중이므로 긍정적인 대답을 쉽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저 <베어타운>의 사건은 그 마을에 묻혀 있고, 피해자들은 마야처럼 극복했길 빌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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