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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18. 2020

[독서 기록] 사건 그 후의 불안감에 대하여

프레드릭 배크만의 <우리와 당신들>을 읽고

(출처 알라딘 소장 이북)





<우리와 당신들>은 프레드릭 베크만의 전작 <베어타운>의 후속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같은 장소, 같은 등장인물, 이후의 시간. 연속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어쩌면 연작 같기도 하지만 옴니버스 작품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 작품을 단독으로 읽어도 이해가 안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베어타운>을 읽은 사람들에게 더 재미있게 다가올 것 같다. 나 역시도 <베어타운>을 재미있게 봐서 <우리와 당신들>에 빠져들어서 보았다. <베어타운>이 그만큼 그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어서 <우리와 당신들>에 대한 기대도 꽤 큰 상태로 책을 접했다.







<우리와 당신들>은 마야의 성폭행 사건으로 베어타운 하키단의 폭풍을 맞은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키가 전부였던 작은 시골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웅에게 피해를 끼진 마야와 페테르 가족을 용서하지 못한다. 이사를 가라고 가족들 몰래 이삿짐센터에 예약을 해놓기도 하고, 신문에 부고를 내기도 한다. 학교를 다니는 마야와 레오의 삶은 더 치열하다. 마야는 여전히 사물함 테러, 문자 테러를 겪고 있고 유일한 친구 아나를 제외하면 그녀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 레오 역시 누나의 편에 서다 보니 절로 혼자가 되고 만다. 힘든 상황이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떠나지 않음으로 자신들이 잘못하지 않았음을 표현한다.


마야의 가족들은 잘 살아내고 있었지만 아픔을 감내하느라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두 아이는 두 아이들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은 미라와 페테르는 그들대로 슬픔에 빠진다. 레오는 그날 이후 피부를 벅벅 긁기 시작하고, 마야는 기타를 연주하지 않는다. 미라는 자신이 일을 더 하고 싶은 게 욕심이 아닌가 생각하고 페테르는 하키단의 무너짐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지역구 의원들에게 공격을 받는다.


그들은 엄연한 피해자, 피해자 가족이다.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들은 베어타운을 떠남으로써 책임을 회피한다. 그런데 그곳에 남은 마야의 가족들은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큰 슬픔을 감당한다. 현실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한공주> 속 실화의 주인공 역시 가해자들의 부모에게 탄원서를 써달라는 강압을 받고, 그로 인해 새로 정착한 곳에 과거가 알려짐으로써 2차 가해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마야에게 베어타운 사람들은 2차 가해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마야에게 잔인해질 필요가 있나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소설의 막바지를 읽을수록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을 외면하지 마라란 이야기를 적고 싶어 이런 에피소드들을 넣은 것 같았다.


마지막에는 마야가 잘 견뎌주어 고맙다고 생각했다. 삶은 견뎌냄의 과정이라고 하는데, 어릴 적부터 견뎌내야 할 일들이 많으면 그만큼 속이 더 단단해지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힘듦이 찾아온다는 생각이 든다. 마야는 슬퍼하고 힘들었지만 단단해졌다. 그 시간들을 견뎌낸 아이라서,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힘든 일을 겪은 벤에게 마야는 우리는 '생존자'라고 말한다. 이 말이 그녀가 보내온 시간들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당신들>은 <베어타운> 그 후의 이야기와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등장시킨다. 케빈의 단짝이었던 친구이자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벤이의 속이야기다. 이 주제를 꺼냄으로써 <우리와 당신들>은 <베어타운>을 읽지 않은 독자로 매료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벤은 다른 하키 선수들과 달리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술을 마시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해도 벤은 꽤 인기 있는 남자애였다. 누나들과 같이 지냈기에 여자의 마음도 잘 아는 아이였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를 데리러 간 아나가 한눈에 벤에게 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따뜻한 온정을 지닌 아이. 벤은 위험해 보이지만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런데 그가 동성애자임에 동네에 밝혀지면서, 그는 매력적인 남자에서 이방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갑자기 벤은 혼자가 된다.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모두에게 거절당한 홀로 섬이란 그간의 홀로 섬과는 느낌이 다른 것이었다. 하키팀에서 역시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하키에서마저도 손을 뗀다. 그런 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코치 사켈 때문이었다.


다비드가 헤드로 떠나고, 수네가 병으로 쓰러지는 일이 생기면서 베어타운 하키팀 코치는 공석이 된다. 그때 수네의 추천으로 여성 코치인 사켈이 영입되고, 그는 그간의 방식을 고집하는 페테르와 사사건건 시비가 붙고 베어타운하키팀 아이들에게도 괄시를 받지만 자신의 실력만으로 하키팀에게도 하키단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한 에피소드로, 그녀를 레즈비언으로 착각한 아이들이 사켈을 쫓아내기 위해 꾀를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켈은 이성애자였음에도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아이들의 장난을 사실인 듯 받아친다. 그녀는 그 아이들에게 하키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싶어 했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상처받지 않았다.


어찌 보면 마이웨이 성향인데, 이 정도로 강단이 있고 하키 외에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여주어서 벤은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가 대놓고 지지해 준 건 아니었으나 그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했다. 어찌 보면 그게 벤에게는 가장 큰 지지였을 수도 있다.


나라의 성향은 아니겠으나, 유독 우리나라가 그런 편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런 편이라는 건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절대 참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책의 제목이 '우리와 당신들'-원제는 우리 대 당신들이었다고 한다-인 것에도 이런 의미가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아닌 당신들이 될 때, 한때 우리였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던 의지를 밝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때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른 노선을 택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극도로 싫었다. 친척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렇기에 나는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어 했다. 지금도 그 부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정말 다행히도 대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이 내가 참아줄 수 없게 안 맞지는 않다. 그런데 반대로 남들의 방식이 참아줄 수 없을 정도로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걸 택하고 살아가는 게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지지를 해주고 싶다.


이 책에서는 벤이가 그랬다. 친했던 동료들이 헤드로 떠날 때도 그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떠나지 않았고, 자신과 한편을 하자는 티무 일당을 배신하고라도 나약한 소년인 레오를 구해주었고, 베어타운에서 갈 곳이 없어진 마야와 아나에게 비밀 아지트를 선물해 주었고, 자신의 비밀을 알린 이도 용서하였다.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 역시, 나라면 내 성향을 부정했을 것 같다.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음 가는 대로 사람을 좋아할 수 있었던 것 역시도 벤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으로 보았다. 물론 그런 부분들을 말할 수 없어 늘 생과 사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걷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길, 다름을 선택한 벤이 참 멋있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이들은 아나와 비다르이다. 아나는 마야만큼 단단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운 길을 걷기로 한 친구의 곁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서라도 자신을 보듬어줄 품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녀보다 심지가 약한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있다. 펠센에서 연락이 오는 날은 그 작은 체구의 소녀가 거구의 아버지를 데리러 가야 한다. 그 일은 어느새 아나의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이 되었지만, 절친한 마야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다. 마야는 더 힘든 일을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 아나가 꽤 속이 깊은 걸 알 수 있는데, 아이는 속이 깊어질수록 일찍 어른이 되겠지만 슬픔과 우울 역시 일찍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는 아나가 밝아 보이지만 꽤 깊은 슬픔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슬픔을 달래줄 이를 찾고 있었다 생각한다. 또 그렇기에 그 희망을 깨뜨린 사람에게 너무 충격을 받아 나쁜 짓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남에게 해를 가할 수 있었다 생각한다. 아나가 실수를 한 부분이, 마야를 그렇게 감싸주면서도 한없이 어리게 굴었던 건 내면의 슬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그녀가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받아왔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럼 마음 아파하는 날도 줄어들었을지 모르니까.


애잔한 마음이 드는 친구라, 비다르가 그녀를 예뻐해줄 때 참 기뻤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생기고, 그녀가 주는 사랑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자꾸 복선을 깔아주시는 바람에 그들의 사랑이 오래가지 못할 걸 예감했을 때, 작가님이 아나에게는 좀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나가 후에는 단단해져서 그의 사랑을 받았던 기억으로 다른 사람과 사랑을 만들어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왕이면 그와 만들어가는 사랑이기를 바랐다.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비다르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자주 했었다. 그 역시도 아나를 만나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그들은 아귀가 딱 맞는 퍼즐 같았다. 서로가 모자란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를 잃은 아나는-내가 생각할 때의 일이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자신의 짝을 찾는 걸 포기했을 것 같다. 그것이 아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견딤이라면, 그걸 주신 신에게 아나의 어깨 위의 추를 좀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게 아나는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었다.





불안 , 그것은 보이지 않는 지배자다.
불안, 그것은 우리를 소유하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주제면에서 봤을 때, 이 두 문장이 <우리와 당신들>을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꼽은 인물들 역시 불안을 가지고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과 감정들이 불안이 되어  자신에게서 마이너스되는 것들만 계속 생각한다. 그 불안을 인물들마다 어떻게 견뎌내고 겪어내는지가 이 소설 안에 잘 녹아있다.

나 역시도 불안감 속에 산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베어타운의 아이들, 또는 어른들의 불안을 보고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의 불안을 이겨나가길 또는 견뎌내길 기도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불안을 견디려는 그들에게서 감동을 받았다. 물론 이날들 후로 그들에게 또 다른 불안이 찾아와서 자신을 먹히기도 하겠지만 또 잘 견뎌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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