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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19. 2020

[독서 기록] 좋아하는 만큼 지출할 수 있는 어른

구달, <아무튼, 양말>을 읽고





홍대 쪽에 있는 땡스북스에 처음 갔던 날, 이음에서 나왔던 청춘문고 시리즈를 처음 보았다. 그 작은 판형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시리즈가 그때 내게 처음 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만을 가던 내가 처음 가본 동네서점에서 처음 독립출판물을 보게 된 것이었고, 제목에 끌려 구달 작가의 <한 달의 길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한 달의 길이>를 본 지도 3년여쯤이 지났다. 세 출판사가 함께 작업하여 출간하는 에세이 '아무튼' 시리즈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그중에서 무엇을 처음 사볼까 고민했다. 얼마 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저자인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를 살까, 원래 좋아하던 소재인 <아무튼, 술>을 살까. 사실 <아무튼, 양말>은 나의 첫 선택지 안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튼'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이것을 선택한 것은 온전히 '구달' 작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선택한 독립출판물의 작가라는 사실, 그 작가를 이제 다른 출판사에서도 알아보고 저자로 생각해주었다는 사실이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아주 작은 계기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러 주제 중에서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 작은 부피의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 들어 더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인데, 대단한 것은 큰 일을 하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작은 일들이 탁구공처럼 오고 가는 일상을 매일 일상처럼 유지하는 것, 그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대작이라고 말하는 큰 스케일의 작품도 좋지만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또 재미있게 다루는 작품들이 더 좋다. 그런 생각을 지니던 차에 이 책을 보고 선택하게 되었다. 






내용은 지극히 단순했다. 양말에 대한 88가지 에피소드. 

정말 지극히 모든 것들이 양말에 집중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덕질을 몰래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양말 브랜드가 그렇게 많고, 양말의 종류가 그렇게나 많은지 정말 몰랐다. 나에게 양말은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그러면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언가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짐덩어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성했다. 나의 덕질이 소중하듯 누군가의 덕질을 소중히 여겨주는 자세를 갖추자고.


어른이 되면 장난감을 사고 싶지 않고,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요즘 완전히 어긋났다. 일찍이 키덜트라는 용어가 생겼고, 아이일 때는 자금이 없어서 구매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금이 있는 어른이 되면서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의 경제가 되었다. 펭수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인기를 누리고 많은 어른들이 관련 제품을 사면서 펭수의 활동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업의 발전이든 그것들의 덕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양말 회사들은 구달님을 비롯한 여러 지네(*폄하 발언이 아니며, 책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분들께 감사를 전해야 한다. 발이 두 개지만 지네보다 많은 양말을 신을 수 있을 만큼 구매자들이 늘지 않았다면, 양말 회사들은 디자인에 이토록 신경을 안 썼을 수도 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이 소소하다. 그런데 공감이 되었다. 발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여름에는 양말 없이 샌들을 신으면 누군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여자애 발 같지 않다는 말을 나도 많이 들어왔던 터라 공감이 되었다. 나 같은 경우는 무시하고 샌들을 신고 다니기야 했지만 불편한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을 지네에 비유했던 것이다. 발이 2개인데 양말이 88개나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나보다 많은 양말을 지닌 사람은 없을 것이라 자부하던 작가의 지네 발언. 생각보다 더 많은 지네들이 산다며(ㅋㅋㅋ) 양말을 모으는 사람들을 지네라 칭하던 작가의 발언이 참 귀엽게 느껴졌다.

명품샵에서 양말을 구입하러 다녔던 에피소드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삭스류'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발언보다, 어두운 곳에서 꺼내와야만 하는 양말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유일하게 스카프와 같은 선상에 양말을 배치해두었다던 그곳에서 양말을 샀다는 작가님의 발언도 이해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차별받지 않는 것, 그런 태도를 갖춘 가게라면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하는 만큼의 양말을 살 수 없다는 작가님의 말이 인상 깊었다. 가게를 들어가면 그리도 예쁜 것들이 많고, 비슷해 보여도 다른 것들이 많고, 그 많은 것들을 소유하기에 프리랜서로 일하는 작가님의 페이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그 동동거리는 모습이 슬픈 일면이지만, 그럼에도 참 귀엽게 내 옆에 있는 한 명의 언니처럼 느껴졌다. 5년 동안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제목이 좀 다를 수도 있다)을 읽으며, 줄일 수 있는 지출을 줄이고 좋아하는 것의 지출을 이어갈 수 있게 노력했다던 구달님. 그녀의 우아한 구매법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누군가에게는 강박감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옷과 매치해야 하는 양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작가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누구나에게 강박은 하나씩 있지 않겠는가. 그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에서 나도 모르게 '저 사람도, 나도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이것인 것 같다. 하루는 너무 평범해 보이고, 다른 날은 너무 특이해 보이는 나도 사실은 그저 여러 사람들 중 한 명이고 어디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것.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읽은 이 책은 내게 그런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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