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KS Mar 19. 2020

[독서 기록] 현실적이어서 슬픈 이야기

황현진 외, <호텔 프린스>를 읽고





젊은 작가들의 단편집이라고 해서 골랐던 책이다. 개인적으로 은행나무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깊어서 출판사 이름을 보고 고른 책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한참을 책장에 묵혀두다가 출퇴근길에 한두 편씩 읽기 시작하였다. 출퇴근 때도 조느라 바빴던 나머지 손에 들고도 한참을 읽었던 듯하다.


'은행나무'라는 이름만 기대어 산 책이지만 잘 골랐다고 생각한 건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읽고 나서다. 이 책의  제목이자 모티프가 되는 호텔 프린스, 그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고 현실에서는 몇 명의 문인들을 뽑아 레지던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러다 이 호텔에서 작업을 하던 문인들이 모여 호텔에 대한 단편을 쓰고, 이에 대한 발표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이 모여 책 '호텔 프린스'가 되었다. 운명을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이 나온 건 운명이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신기했다. 책을 만들게 된 이야기가 오히려 더 소설처럼 느껴졌다. 이런 기획의도를 가지고 쓰인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일단 흥미가 생겼고, 작품집에 빠져들게 되었다.





작품집은 여덟 작가의 여덟 작품을 싣고 있다. 작가와 작품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

황현진 <우산도 빌려주나요>, 김경희 <코 없는 남자 이야기>, 서진 <해피 아워>, 이은선 <유리주의>, 정지향 <아일랜드 페스티벌>, 김혜나 <민달팽이>, 안보윤 <순환의 법칙>, 전석순 <때아닌 꽃>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고 직접 느끼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황현진 작가의 <우산도 빌려주나요>였다. 

요약하자면 너무 작은 일로 하루가, 어쩌면 인생이 꼬여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다.

좀 더 자세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상경한 어머니를 데리러 가던 딸은 스파(SPA) 가게의 세일 중이란 팻말을 보고 홀리듯 옷을 보러 들어간다. 옷을 입어보고 나오던 중 엄마에게 전화가 오고, 전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딸은 전화가 잘 들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뿔싸, 그런데 자신의 손에 옷이 들려 있고 보안요원들이 자신을 잡으러 왔다. CCTV도 고화질이 아니라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없었다. 무단이탈으로 간주되어 옷의 몇 배, 몇십 배가 되는 배상금을 요구했고 나는 내일 내로 처리하겠다고 얼버무리며 가게를 나온다. 사실 내일은 군대에서 사고를 친 남자친구가 자신의 집으로 오기로 했었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머리가 복잡한 나는 일단 엄마와 남자친구를 마주치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와 호텔로 향한다. 어마어마한 요금에도, 엄마의 잔소리에도 엄마를 데리고 호텔로 간다. 내 휴대전화에는 배상금을 요구하는 전화가 계속 울린다.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여 내 상황을 알리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러다 내가 씻으러 들어갔을 때, 엄마가 내 전화를 받는다. 그러고 내 딸은 그런 아이가 아니다, 도둑질을 할 아이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모른 척 다시 욕실로 들어간다.


이 작품 속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보안요원들과 CCTV를 확인하던 장면이었다. 나는 나의 무죄를 증명하고자 CCTV영상을 요구하는데, 전화소리가 안 들려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몸을 돌리는 모양새가 영상 속에서는 남들의 눈을 피해 옷을 훔치는 것처럼 보인다. 내 눈에도 내 행동이 이상해 보인다. 그때 직감적으로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것을 예감한다.

살면서 이런 일 한번쯤은 모두 있지 않을까. 신이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느낌. 그 부분을 현실적이고 공감이 잘 되게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훔치지 않아도 화장품가게나 옷가게의 보안 장치가 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가방을 보여주며 아무것도 없는데 이게 왜 울린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내 가방에 내 기억에도 없는 옷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운이 좋다면 제가 모르고 넣어 버렸나 봐요, 하고 돌려주고 사과하면 끝날 일이다. 운이 조금 나쁘면 점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주의하세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산도 빌려주나요>에서 맞은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다. 어떤 배려도 받지 못하고 규칙대로 몇 배의 돈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호텔로의 도망을 선택했다. 현대인에게 휴대전화란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도망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나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면서 나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주인공보다 걱정을 덜 하진 않았을 것 같다. 경찰서에 가기 싫어 부모님께 일단 돈을 빌려서 처리한 후 갚기 위해 일했을지도 모른다. 방법을 다를지 모르겠으나 주인공이 느낀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마음이 뚝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은 주인공이나 나나 똑같이 느꼈을 것 같다. 그 마음이 왠지 상상이 가서 더 서글펐다.


마지막으로 슬펐던 건 엄마가 우리 딸은 도둑년이 아니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딸에게 엄마가, 엄마에게 딸은 서로의 분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딸은 엄마의 과거였고, 엄마는 딸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딸을 두둔하는 것은 물론 내 자식이기 때문이라서도 있겠지만, 과거의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딸을 생각하는 마음에 한 번, 내 어린 모습을 방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두 번 슬퍼졌다. 사실 이건 내 개인적 의견이라 소설의 의도와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이 다른 것들에 비해 마음에 남은 건 왠지 누군가는, 어쩌면 나도 겪을 수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슬픈 이야기는 현실성을 가지고 있을 때 더 면밀하게 상상하게 되어서 더 슬퍼지는 것 같다. 이 작품이 딱 그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이어서 더 슬픈 이야기, <우산 빌려주나요>.

작가의 이전글 [독서 기록] 좋아하는 만큼 지출할 수 있는 어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