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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23. 2020

[독서 기록] 나는 책갈피나 되어 보았을까

김먼지, <책갈피의 기분>을 읽고


(*서술 시점이 현재와 차이가 있어, 매거진 연재 글에 나오는 시점과 차이가 있음을 공지합니다.*)


<책갈피의 기분>의 김먼지 편집자는 출판사에서 8년을 일한 편집자라고 자신의 직업을 밝혔다. 출판계에서 일한 지 4년 가까이가 되어 가지만, 나는 내 직업을 편집자라고 말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출판사를 겸하는 직장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책을 만들고 편집하는 일 외의 주업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사에 들어가고자 열심히 노력했지만, 휴직 기간의 압박과 건강상의 이유 등이 겹쳐서 다시 구한 직장 역시 출판업을 겸하는 스타트업이다. 여기서는 편집팀으로조차 분류되지 못하였고, 도서 편집자로의 정체성은 더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이런 고민을 회사 몰래 마음속에 품었을 때, <책갈피의 기분>을 만나게 되었다.






정통적인 출판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도 작가님의 글은 대체적으로 공감이 되었다. 어쨌든 책을 만드는 직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겪어보았을 법한 일이었다. 가장 신박했던 것은 중간중간 끼워져 있는 편집자의 메일이었는데, 그중 몇 가지 메일은 나도 적어보았던 내용이었다.


하필 전체 내용을 이 회사에서의 처음 좌절을 겪었던 때에 읽었는데, 편집자로 일할 때 참 힘들었지만 이랬지 하는 추억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주로 출판사에는 '책이 좋아서'라는 간단한 이유로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들어온다. 나 역시도 그랬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국문을 전공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철이 없었던 나는 대학 공부와 취업과 많은 연관을 두고 있지 않았다.  모두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일단 하고 싶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때도 흔하지 않았던 '국어국문' 단일 전공을 하였다. 그랬더니 4년의 학제를 끝냈을 때, 내 앞에 놓인 생계의 길은 넓지 않았다. 그리고 책에서도 나오듯, 늘 인력난에 허덕이는 출판사는 그런 나의 발을 이끌어주었다. 작가님의 취업도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창작자로 갈 수 없음을 느끼고 나서는 나와 같은 길을 걸었던 것 같다.






여기서 두 번째 공감을 했다. 글이든, 그림이든 창작자의 길을 걷는다는 건 어느 정도의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력으로 실력을 쌓는 작가들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노력으로 나를 이끄는 무언가, 예술가로 살게 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그 힘든 길을 견디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예술가의 삶이 주어진다는 점은 나의 생각과 같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덧붙여 천부적인 능력이 주어진 사람 역시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글에 진지해졌던 어느 때, 내가 창작자로의 능력은 없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창작자와 가까워질 수 있는 편집자라는 직업을 선택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사실 진짜 실현될지는 몰랐다. 그리고 창작자와 만나는 일이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_^)





편집자라는 직업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 건 정말 얼마 전의 일이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드라마 덕이 컸고, 독립출판물과 독립서점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이후, 사람들이 직접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의 직업이 무엇인지,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끔 말하는 것인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내용이 재미있으면


"와, 이 책 작가 누구야?"라고 하며, 표지가 예쁘면

"디자이너 누구래~?"라고 하지만,


"편집부 수고했겠다."


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은 업계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편집자는 있으나마나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와 디자이너, 마케터와의 의견을 조율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가는 사람이 편집자지만 그들의 능력은 책의 성공만큼 인정받지 못한다. 곰곰이 생각해봐라. 성공한 책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편집자가 숨겨진 존재는 아니다. 판권지에도 편집팀에 엄연히 이름이 올라간다. 그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띄어쓰기 몇 개 잡고 이런 정도의 업무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게 많이 알려져서 좋지만 예전에는 그만큼의 대우를 못 받는 직업이었던 것 같아 슬펐던 적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 외에도 업무적인 부분들에 많은 공감을 했지만, 왠지 기억나는 건 테이블야자가 죽었다는 걸 몰랐다는 말이었다. 아주 이상하게도, 나의 회사들은 지상층에 있었지만 햇살이 잘 들지 않았다. 오래 일했던 회사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식물들에게 해를 보여주기 위해, 한 달에 며칠은 유일하게 자연광이 드는 화장실로 화분들을 옮겨놓곤 했었다. 물론 작가님의 테이블야자는 물을 주지 않아 죽어간다는 의미였지만, 출판사의 식물이라는 건 왜인지 모르겠지만(2) 모두 살기 힘든 생활을 견뎌야 하는 듯했다. 회사 동기와 씨앗을 심어 자라나게 하려 했던 식물도, 자연광을 보지 못해 웃자라기만 해서 결국 생을 끝내야만 했다. 그 외에도 가끔은 뿌리가 썩어서 죽고는 했는데, 모두 마시다 남은 물을 거기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분받침이 넘치면 물을 주지 말라는 지침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감에 집중한 편집자가 식물이 마르지 않았나 신경 쓰는 건 어려운 일인 듯하다. 당장 2교 종이를 찾아달라고 하면 찾아줘도, 내 책상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각종 종이 먼지가 얼마나 날리는데, 산세베리아가 그걸 환기하다 업무 과다로 쓰러질 것이다.






마지막에 죽은 줄 알았던 테이블야자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편집자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듯했다. 물을 주지 않거나 과도하게 주거나 주변에서 괴롭히는 게 많아도 꿋꿋이 버티고 있던 테이블야자, 그 삶은 어쩌면 김먼지 작가님이 버텨왔던 삶의 궤적과 닮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일은 그만해야지 했던 마음을 그 아이가 살아있다는 걸 봄으로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도 <책갈피의 기분>을 보면서 끈을 놓지만 않고 있다면, 다른 일을 하다가도 책을 중점적으로 만드는 편집자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생계와 약간의 타협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원했던 만큼 책만 만들 수 있는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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