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영의 <군산>(대한민국 도슨트 7)을 읽고
"군산 사람이에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변명하는 사람처럼 대답이 길어지곤 했다. 나는 군산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 이 도시에 처음 온 날은 1990년 12월 18일, 열아홉 살 겨울이었다. (시작하며 中)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중 <군산>을 고른 게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 건, 이 구절 때문이었다. '지역 사람' 정의를 생각해야 하는 질문을 받은 저자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경한 후, "어디서 살다 왔냐?"는 질문보다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나는 대전에서 가장 오래 살았지만, 대전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너댓 살까지 살던 곳은 출생지와는 또 다른 지역이었다. 여러 지역을 거쳐온 나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어디를 고향으로 소개해야 할지 고민했다. 왜냐하면 "고향이 대전"이라고 말하면, 대전에서 태어나서 자란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무 살 언저리에는 이 정보를 꼬박꼬박 바로 잡고 싶어서 "태어난 곳은 다른 곳이지만"이라고 덧붙였고, 그러다 보면 대답이 길어졌다. 지금은 그게 귀찮아서 대전에서 태어난 척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 대답을 꼭 고치려고 했었다. 그래서 한때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은 내게 좀 거북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이 느낌을 다시 기억나게 한 건 <서울 촌놈> 프로그램이었다. 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서울 촌놈'들에게 자신의 고향을 소개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진행자들이 서울 사람인지 알아보는 질문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나요?",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다녔나요?"를 물어봤고, 역시 그 지역 사람이려면 '지역 태생'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 <군산>을 만났다. "군산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에 고민하는 배지영 작가의 모습은 나의 과거와 닮아 있었다. 그래서 정이 갔고, 이 책을 고른 데에 만족했다. 이상한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작가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책을 펼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군산'이라는 도시를 소개하는 사람으로 배지영 작가는 모자라지 않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 그러하다.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면 아는 건 많아진다. 배지영 작가는 그걸 뛰어넘을 애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소개한 군산이 모자라다고 생각지 않았다.
책 속의 공간은 타 지역 사람인 내게도 친숙한 공간부터 낯선 공간의 순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경암동 철길마을이나 초원사진관, 이성당 등은 여행에서 만나본 장소였다. 알고 있는 곳부터 나오니 어렵지 않게 스타트라인에 선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장소 배치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을 만나기 전에 아는 곳을 들리니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렇게 익숙한 곳부터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하고 나니, 군산이 품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책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이미 들렀던 곳들의 이야기도 더 깊게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성당의 전신이 '이즈모야 과자점'이라는 것, 빈해원의 첫 모습이 지금과는 달랐다는 점 등이 내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도슨트>의 책은 그 도시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도 유용하겠지만, 그 도시를 거쳐간 사람에게 유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걸어본 곳이 사실 어떤 정보를 품고 있는지, 놓치고 온 정보는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 도시를 다녀온 여행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부록 교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전 여행을 떠올리고 싶은, 그곳을 품어본 적 있는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