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SNS 광고로 책을 읽기도 전에 많은 것들을 접하게 되는 책이 있다. <1cm 다이빙>, 이 책이 그러했다. 구절구절이 인스타그램에 광고로 소개되었고, 스크롤을 내리면 자주 '좋은 문장'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그래서 오히려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절은 이미 읽어버린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1cm 다이빙>을 빌린 건 다소 충동적이었다. 지하철역에 있는 도서 대출기를 이용하여 책을 빌려보는 경험을 하고 싶었고, 사람으로 북적이는 역에서 나는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사이 스크린에 뜬 여러 대출 가능 목록 중에 이 책을 알고 있었고, 이 앞으로 손이 갔던 것이다.
예상했던 것에 비해 내 취향에 잘 맞는 책이어서 놀랐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입을 지나오면서 통과의례처럼 하게 되는 생각들이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위로를 주는 책이었다. 독자를 3호(저자를 각각 1호, 2호라고 칭한다.)로 부르며, 자신들의 질문을 읽는 이에게도 던진다.
나는 대답해야 하는 부분(책에서는 여백과 함께 써보기를 권장한다.)에서 자꾸 멈칫하게 되었다. 내가 어떤 노래를 듣고 싶은지, 인생 영화가 무언지, 장점이 뭔지... 어떤 질문도 탁 하고 답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자신감이 낮아지긴 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머릿속 질문에도 쉽게 답을 내지 못해서 놀랐다. 그래서 <1cm 다이빙>을 완독할 때까지, 질문에 편하게 답해보는 걸 연습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그럴듯한 답을 내리려고 노력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이 책을 읽었다.
완독 후, 이 책이 광고 효과만으로 인기인 책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상처받아본 2,30대라면 공감할 법한 이야기가 있어서 공감을 얻은 것 같다.
'지금 이런 쓰레기를 내려고 했냐?' '한구석이라도 괜찮은 부분이 있어서?' '안 쪽팔려 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게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시간과 노력이 아닌 나를 얼마나 깎아내리는지로 변해 있었다. 이게 지금까지도 고치지 못한, 정말 간절하게 버리고 싶은 습관이다. -힘내서 힘 빼고 쓴 글 중
난 장점이 없다. 잘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난 다 못하기에 다 열심히 한다. 남들에게 별 것 아닌 것 하나를 얻기 위해 나는 인생을 바친다. 밤새워 고민하고 쓰고 읽고 말하고 행복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흔한 재능 하나도 없기에, 나는 모든 것에 사활을 건다. 맞다. 나는 노력을 잘한다. -또래보다 떨어지는 놈 중 그중에서 내가 가장 공감한 것은 이 두 부분이었다. 나는 나를 칭찬해주는 데에 인색하다. 더 나아가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하고 깎아내릴 궁리를 더 한다. 첫 번째 발췌 부분과 비슷하다. 두 번째 글에서는 '잘하는 것이 없다'는 부분에 공감했다. 누군가 장점을 물어보고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해야만 하는 자리가 생기면 장점을 '성실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때마다 상대방은 '그것밖에 없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마다 성실하다는 걸로 설명되어야 하는 내가 작아 보였다. 저자 역시 노력을 잘하는 것으로 작아졌던 적이 있지만, 그게 장점임을 인정하고 뭐든지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여서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다.
단문의 형식이나 여백이 넓은 부분이 책보다 인스타그램용 글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이 책을 집은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 길이의 글이 적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다. 매번 무거운 걸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가벼워서 좋았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