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KS Mar 29. 2020

혼자 하는 여행의 즐거움

처음 혼자 떠나본 도시 도쿄에 대한 단상


중학교 1학년 때, 과외를 받던 선생님의 선의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 때 부전공으로 일본어를 배웠다던 선생님은 주말에 남는 시간을 할애하여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그렇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과외 선생님이 소개해준 일본인에게 발음 교정도 받았다. 3년 동안 어영부영 일본어를 배우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동아리가 활성화된 곳이었다. 집과 거리가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해서 친구도 적었다. 친구도 사귈 겸 선배들도 알아갈 겸 동아리 탐색을 하던 중 '일본문화연구' 동아리를 발견했다. 이거다 싶었다. 만화, 사진, 천체관측 동아리와 같은 것들은 실습이 필수였다. 그때도 활동적인 생활은 즐기지 않았기에 최대한 안에서만 하는 동아리를 찾고 있었는데 '연구'라는 건 책상과 한 몸 아닌가.  인맥도 쌓고 활동도 없(을 것 같)아 좋았다. 사실은 별 영향 없을 것 같은 면접을 거쳐 동아리 일원이 되었다.


우리 기수(같은 학년, 그때 동아리 내에서는 학년보다 기수를 많이 썼다.)는 유난히 일본어를 잘했다. 선배들보다 월등히 좋은 실력을 이미 갖춘 채 들어온 동기들 덕에 저절로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3년 동안 일본어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6년 동안 알음알음 공부한 실력을 측정하고자 수능이 끝난 이후에는 일본어 능력 시험을 봤고 2급을 취득했다. 당시에는 '전공할 것도 아닌데 2급이면, 뭐.'라며 만족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일어 실력이 최고조였을 텐데 1급을 도전이나 해볼걸 그랬다 싶은 아쉬움이 있다. 대학 졸업 전 한 번 갱신했으니 어릴 때 공부한 노력을 오래오래 우려먹은 셈이었다.

 





공부한 기간이 긴 만큼, 학창 시절에도 일본 연수를 갔던 적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학생이 외국을 갈 기회가 쉽게 주어지는 건 아니었다. 대학 때도 학교 간 문화교류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일본을 다녀왔다. 그럼에도 수도인 도쿄에 갈 기회는 없었다. 언젠가 가볼 수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 다녀왔던 삿포로의 정경



시간이 한참 흘러 한 회사를 들어갔다가 나왔던 2014년,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왔던 친구가 일본으로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예상했겠지만 맞다. 일본 문화를 연구하던 무리 중 한 명이었고, 그때도 이미 만렙의 일본어 실력을 가지고 있던 친구였다. 전공보다 일본어를 잘해서 걱정이라던 대학생 시절을 거쳐 친구는 일본어를 살려 취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축하 파티를 하고 나서 한 달 뒤 친구는 일본, 그것도 도쿄로 떠났다. 친구가 떠난 다음 해, 나는 다시 취직했다. 친구는 도쿄에 집만 구하면 재워주는 건 문제도 아니라며 놀러 오라고 했었다. 적당한 때만 노리고 있었다. 취직한 회사에서의 정직원 전환이 확정된 날 친구에게 말했다.


"나 도쿄로 놀러 갈래!"




"초밥 먹으러 일본 간다."라는 속설이 있을 만큼, 도쿄는 가까웠다. 도쿄 인근 시에 살던 친구가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왔던 시간이 내 비행시간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온 나를 이끌어 친구는 내 가이드북을 빼앗아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딘데?

"나? 나는 허니와 클로버*에 나온 데!!"

"그게 어딘데?"

*허니와 클로버 : 우미노 치카의 만화로, 2005~2006년에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미대 대학생들의 고민과 사랑을 그린 만화다. 해당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여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다. (나무위키 정보 참고)


남들과 다른 위시리스트를 적어온 나를 보고 친구는 적잖이 놀라는 듯했다. 가면 들판만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정말이었다.


덩-그러니


주인공들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주요 에피소드가 진행된 곳인 그곳은 들판이었다. 저 멀리 유소년 야구단이 야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추억의 여행은 그렇게 현실과 가까워졌다. 그러고도 최애 애니메이션 여행지 찾기는 계속되었다. 


다름 아닌 유람선 탑승이었다. 초봄에 유람선을 탔다가 칼바람을 맞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오다이바까지 수상 버스를 이동하기로 했다. 마지막 코스가 오다이바 관람차 탑승이었기 때문이다.


유람선 탔다!


중간중간 다른 여행지들도 들렀지만, 이 여행의 중심은 최애 애니메이션의 코스를 따라가 보는 것이라 남들에 비해 좀 특이했었다. 관람차는 남들과 유사한 코스였지만 그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관람차 안에서 보는 풍경


연차를 쓰지 못하고 주말여행으로 온 탓에 첫 도쿄행은 이렇다 저렇다 생각할 새도 없이 끝났다. 그래서 다음에는 남들이 다니는 곳들을 가봐야지 다짐했다.





생각보다 기회는 빨리 왔다.

다음 해 5월 황금연휴가 찾아왔다. 일본 역시 성수기였기에 엄청난 항공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친구를 본다는 핑계로 다시 떠날 수 있었다. 친구는 순환 근무를 하고 있었고, 그중 며칠 쉴 수 있게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 처음 며칠은 나 혼자 돌아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 달 전 휴가를 냈음에도 수용해주지 않은 친구의 회사에 짜증이 났다. 1년에 한 번 보는 친구와 같이 있을 시간도 없고, 조금 더 편히 지낼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며칠 혼자 여행을 하면서 친구와 있다면 솔직하지 못했을 순간들에 솔직해졌다.


누군가는 거절할 나의 특이한 소비성향을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 때를 맞추기보단 먹고 싶은 시간에 끼니를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커피를 먹지 않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 없이 커피를 마음껏 마시러 다닐 수도 있었다. 


혼자 한 여행의 순간들


도쿄는 내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실행해본 외국 도시였다.

우리나라는 말이 통하고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에 혼자 훌쩍 떠나고는 했으나 외국은 아니었다. 아무리 치안이 좋아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친구와 만나기 전 며칠의 행복이 내게 '혼자 떠나는 여행의 재미'를 알려주었다.


친구와 함께한 시간도 혼자 돌아다닌 순간들만큼 소중하고 재미있었다.

친구가 외국에 거주함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분명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행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지브리 박물관 티켓을 사두었다든지, 현지인들의 리뷰를 보고 식당을 선택할 수 있었다든지, 디즈니랜드를 근교에 사는 주민 찬스로 할인받을 수 있었다든지 하는 것들. 내가 혼자 다녔으면 누릴 수 없는 혜택들을 친구에게서 많이 받았다. 


친구와 함께 했던 여행지들





내게 도쿄는 혼자와 같이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여행지였다.

혼자 하는 여행과 함께 하는 여행의 차이는 분명하다. 혼자 하는 여행은 오직 나만을 위해 여행 스타일을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함께 하는 여행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둘 다 소중한 경험이지만, 내가 떠나는 여행이기에 누군가와 함께라도 잠깐 나만의 여행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도쿄 여행에서 느꼈다.


도쿄는 도쿄타워, 오다이바, 디즈니랜드 등이 있는 일본의 관광지이며,

내게 도쿄는 '혼자 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 도시다.



일본 여행에 대한 반응이 이 여행을 갔던 시점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혼자 여행의 즐거움'을 깨달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정을 잘 살릴 수 있는 곳이어서 적은 것임을 주지하는 바이다.


-fin

매거진의 이전글 세 번의 경주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