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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31. 2020

[독서 기록] 선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나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똑바르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차별 없이 온 사람을 대하리라는 환상은 없다. 바르게 살려는 노력을 하지만 '똑바르게 살고 있다'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어떤 이슈를 접할 때 나도 모르게 '피해자가 조금만 조심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옳지 않은 생각임을 알고 있지만 옳지 않음을 빠르게 바로잡을 수 없는 세계를 살고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건 결국 '나다'라는 생각을 했다.


차별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졌던 듯했다. '차별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는 동안 그걸 철폐해줄 세상은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굉장히 시니컬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다. 그럼에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은 것은 알아야 할 현실을 파악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존경했던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이 하나 있다.

"관심이 없는 일이어도 모두가 관심을 두고 있으면, 그걸 들여다봐야 한다. 내 관심과 상관없이 현실이 진행된다 하면 하지 않아도 현실을 알아야만 한다."

교양서에 관심이 없어도 읽으려고 하는 것, 사회 이슈에 대해 고민하는 것 등에 그리 큰 관심이 없어도 파악하려고 하는 건 그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현실을 내가 조금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 책이다.


관심이 없는 분야였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책은 아니었다. 출판사 유튜브계의 신화를 쓰고 있는 민음사tv에서 창비 마케터와 만난 에피소드가 있다. 그곳에 출연한 창비의 마케터가 도서 몇 권을 추천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추천 이유를 들으며 올해의 교양서로는 저걸 읽어보자 마음을 먹었다. 도서관에서 대여 순서를 기다리던 중 코로나가 찾아왔고, 대기 순서에서 잘렸다. 한동안 다른 책을 읽다가 우연히 독립서점 부비프에 가게 되었다. '한 권을 데려와야지!' 하며 책장을 돌아보던 때, 이 아이가 눈에 띄었다. 드디어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만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싶었다.







낙차를 겪은 말은 파동을 만든다

퇴사의 여파를 힘든 마음으로 모두 맞고 있던 중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는 중에도 나는 아직 그곳의 사람인 것 같은 미련을 가진 때였다. 그래서 밤마다 대표가 지껄여댔던 말들을 복기하면서, 모든 일의 잘못은 나에게 있나 곱씹고 곱씹었다.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걸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대표새X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대표와 싸웠던 일 중 말의 어감 차이에 관한 게 많았다. 대표는 좋은 의도로 말했다 하였지만 직원은 내 입장에서는 절대 그 의도로 들리지 않았던 말들에 대해 나는 상처받았고 삐뚤어진 말을 던졌다. 그 말에 대표도 상처를 받았고 우리는 맨날 치고받고 싸웠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다. 정말 저 놈은 이게 좋은 의도로 들릴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았다.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실언도 비슷하다. 대중의 공분을 산 사례들을 보면, 자신은 "비난할 의도가 없었다"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다"라고 항변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문제는 그가 서 있는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 1부 1장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中 


대표와 나의 위치에는 높낮이가 있었다. 그의 좋은 의도는 높은 곳에서 내려오면서 의미가 변색되어 버렸던 것이다. 어이없게도 이걸 읽으며 그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방울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모양을 잃고 퍼지는 것처럼 높은 곳에서 떨어진 말은 나에게 큰 파동을 전달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읽히는 게 다르다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라는 소제목처럼 어떤 에피소드는 굉장히 동감하면서 읽었고 어떤 에피소드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읽었고 또 다른 어떤 것은 이해하려 노력해야만 했다. 위치에 따른 이해도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여자가 차별받는 점에 대한 것들이 금세 이해되는 것은 나도 여자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장애인의 이야기를 더 숙고해서 읽어야 했던 건 내가 비장애인이 때문일 것이다.


1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부터 3부인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까지 읽으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나의 위치다. 나의 위치에서 읽히지 않는 부분은 어디인가를 파악했다. 그 부분이 내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태도'를 갖춘 부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성소수자, 인종, 난민 등의 이야기에서 나는 종종 막혔다. 나는 내 생각보다도 우위에 서 있는 입장이었던 때가 많았고, 차별받지 않음이 가장 큰 혜택이었음을 종종 깨달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이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차별을 하며 살 것이다

깨달았다고 바로 감화가 되면 참 좋겠지만, 나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기에 나도 모르게 사람들 사이의 다름을 찾을 것이고 몇몇 차별적인 시선도 보낼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게 맞다고 느꼈다. 나는 모자란 사람이고 실수를 할 것이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설명했던 '결정 장애' 에피소드처럼 멋모르는 실수는 생기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 더 많이 느꼈기에 노력할 것이다.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저자는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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